“공약했던 수준보다 더 나아간 (검찰ㆍ경찰 수사권 조정)중재안을 제시했지만 여러분(경찰) 조직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19일 62회 경찰의 날 기념식이 열린 서울 세종문화회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이 한마디에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노 대통령이 “출신의 연고에 따라 내부 집단이 형성되고 특정 집단의 독주 체제가 조성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작심한 듯 경찰 조직 내부의 민감한 문제까지 거론하자 참석한 3,800여명의 전ㆍ현직 경찰관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기념식이 끝난 뒤 이들은 삼삼오오로 흩어지면서 노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한 총경급 간부는 “예년에는 박수가 비로 의례적이긴 해도 십여 차례 이상 이어졌지만 오늘은 단 3차례 뿐이었다”며 “잔칫날 대놓고 욕을 먹은 꼴이어서 참담한 심정으로 노 대통령의 얼굴만 바라봤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드러내놓고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 표류의 책임을 경찰에 묻고, 경찰대학교를 직접 겨냥해 ‘제도 개선’의지까지 내비치자 경찰이 벌집 쑤신 듯한 분위기다.
검경 수사권 조정 표류에 대해 경찰은 “억울하다”는 반응이 다수다. “대통령이 공약을 못 지키자 공연히 경찰 탓만 하고 있다”는 비난도 들렸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2004년 허준영 경찰청장 시절 검찰과 경찰이 합동위원회를 만들어 수차례 회의를 하고 이해찬 총리까지 직접 개입했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2005년 이택순 청장 취임 후로는 논의 자체가 유명무실해졌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당시 최종안은 주요 범죄에 대해 지금처럼 검찰의 지휘 통제를 받으라는 것이어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며 “경찰 입장을 배려해준 안을 제시했다는 대통령의 말은 실상과 다르다”고 말했다.
‘내부 파벌의 독주체제’경고 대목에서는 “경찰대 개혁이 본격화하는 신호탄 아니냐”며 곧 시작될 경찰 간부 인사와 연결시키는 모습이었다.
경찰대 출신 간부들은 특별한 행동은 보이지 않았지만 당혹해 하는 기색이었다. 경찰대 동문들은 황운하(1기) 총경을 대표로 해 수사권 조정 논의에 소극적인 이택순 청장과 여러 차례 갈등을 빚어왔다. 하지만 간부 후보생 출신 간부는 “노 대통령이 특정 세력에 의한 경찰 내 기강 해이를 정확하게 지적한 것”이라고 옹호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경찰대 입학 정원 절반 감축, 순경 출신 간부교육생의 경찰대 입학’등 구체적인 경찰대 개혁안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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