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연일 고공행진을 하면서 증시도 갈피를 못잡고 있다.
8월 중순부터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 대출) 쇼크에서 벗어나 숨 돌릴 틈 없이 상승곡선을 그어 오던 종합주가지수(코스피)가 2,000선에 재돌입하면서 ‘고유가’라는 돌발 변수를 만나 방향을 휘청거리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고유가가 조정의 빌미를 제공하는 암초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도 그럴 것이 18일 현재 국제유가(서부텍사스산 중질유 11월 인도분 가격)는 배럴 당 87달러 수준으로, 이대로라면 100달러를 뛰어넘는 것도 시간 문제다.
문제는 고유가 추세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우선은 신흥시장의 성장으로 원유 수요가 늘고 있지만, 공급량은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달러화 약세가 지속되면서 유동 자본들이 원유 사재기에 나섰다. 여기에 터키와 이라크 쿠르드족 간의 분쟁으로 중동 정세가 불안한 것도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증시에서는 74년과 79년 석유 파동의 씁쓸한 기억들을 되새기면서 “일찌감치 증시에서 철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는 투자자들이 많다.
하지만 증시 전문가들은 아직은 국제 유가가 위험 수준이 아니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또 최근의 유가 상승은 1,2차 석유파동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지적이 많다.
과거 유가 급등은 대부분 자원민족주의의 발현이나 걸프전 발발 같은 공급 쇼크의 결과였던 반면에 최근의 고유가 행진은 중국과 인도 등의 신흥시장에서 석유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생겨난 현상이라는 주장이다. 때문에 유가 상승은 오히려 신흥시장의 성장성을 보여주는 반증이라는 지적이다.
한국투자증권 이정민 연구원은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한 세계 경제 호황으로 유가와 주가가 비슷한 궤적으로 상승곡선을 긋고 있다”며 “더구나 세계 각국이 대체 에너지 개발에 나서면서 원유 의존도가 점차 낮아지고 있어 아직은 걱정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원유 생산국들이 고유가 기조로 벌어들인 풍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투자를 늘려 세계 경제를 이끌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유가상승→원자재 생산국 경기 호조→투자확대→기타 국가 경기 호조’라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최근 중동을 중심으로 플랜트 수주가 급증하고 건설 경기가 살아나면서 우리나라 관련 기업들의 실적도 좋아지고 있다.
미래에셋증권 이정호 센터장은 “고유가 기조가 유지돼야 원유 생산국이나 석유 메이저 회사들의 투자가 활기를 띨 수 있다”며 “기름값이 지나치게 오르는 건 문제지만 100달러 미만의 유가 수준은 세계 경제를 활황으로 이끄는 원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증시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유가 수준은 얼마나 될까. 전문가들은 대략 90달러를 임계치로 보고 있다. 대우증권 고유선 연구원은 “세계 경제가 평균 5%정도 성장한다고 가정하면 유가가 90~95달러에 도달하면 과거 석유 파동과 같은 충격이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투자증권 박형중 연구원은 “94달러 정도 돼야 유가상승이 인플레를 유발해 경제 성장률을 추락시키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며 “2차 석유 파동 같은 충격이 오려면 144달러 수준까지는 가야 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안형영 기자 promethe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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