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 둘 중 한 명은 현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으로 경제성장을 꼽았다.
53.8%의 압도적 응답률을 보인 경제성장은 남녀노소, 지역, 학력, 직업, 교육 및 소득수준, 이념 성향과 관계없이 모든 계층에서 1순위 시대정신으로 꼽혔다
. 2차 정상회담 이후 이슈가 되고 있는 한반도 평화는 11.4%의 응답률에 그쳤다. 특히 블루칼라(62.1%)와 자영업자(59.3%) 계층에서 경제성장 응답율이 평균치를 상회, 이들이 얼마나 경제성장에 목 말라 하고 있는지를 드러냈다.
다만 대선을 앞두고 지지 후보에 따라 선택에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이명박 후보 지지자들은 응답자의 62%가 경제성장을 꼽은 반면, 정동영 후보 지지자들은 45.6%만이 경제성장을 시대정신으로 꼽았다.
대신 한반도 평화(17.3%)에 대한 응답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 지지자들은 경제성장(50%), 사회적 평등(20%), 한반도 평화(11.1%) 순으로 고르게 분포됐다. 지지정당별로는 민주노동당 지지자가 사회적 평등(20.5%)을, 민주당 지지자가 한반도 평화(21.6%)를 상대적으로 많이 선택했다.
이 같은 시대상을 반영하듯 ‘차기 대통령이 가장 우선시해야 할 정책이 무엇이냐’(2개까지 중복응답 가능)는 질문에 응답자의 53%가 경제성장을 꼽았다. 이어 42%가 일자리 창출을 선택, 이번 대선에서의 화두는 단연 ‘경제’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이어 교육개혁(19.4%), 복지정책 강화(17.2%), 부패 척결(15.3%)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정치개혁(6.0%), 언론개혁(4.3%), 대외개방(1.3%)을 차기 정부가 가장 우선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은 많지 않았다.
경제성장을 최우선 정책으로 꼽은 응답자들은 50대(64.9%), 농ㆍ임ㆍ어업 종사자(71.0%), 보수 성향(60.0%)에서 상대적으로 많았다.
일자리 창출은 20대(49.3%)와 학생층(56.3%)에서, 교육개혁은 30대(25.5%)와 주부층(26.0%)에서 응답률이 비교적 높았다.
특히 정 후보 지지자들은 경제성장(25.5%)과 일자리 창출(21.7%)의 응답율이 엇비슷했으나 이 후보 지지자들은 경제성장(44.3%)을 일자리 창출(19.1%)보다 훨씬 많이 택해 눈길을 끌었다. 두 후보 지지계층의 차이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신재연 기자 poet333@hk.co.kr
■ 미래 가로막는 장애요인 "정치권의 무능과 대립" 최다
한국 국민들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무능하고 반목과 갈등을 되풀이하는 정치권부터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미래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요인’을 묻는 질문(복수 응답)에 38.1%가 정치권의 무능과 대립을 꼽았다. 다음으로 소득 양극화 심화(26.5%), 부정부패(26.4%), 부동산 가격 급등(20.3%), 비효율적 교육 제도(17.9%), 집단 이기주의(17.8%) 순이었다.
대부분의 응답자들이 정치권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한 가운데 특히 30대(43.2%) 자영업(50.4%) 인천 경기(42.4%) 대재 이상(41.8%) 월소득 401만원 이상(44.3%) 이명박 후보 지지층(42.2%)에서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만이 높게 나타났다.
반면 중졸 이하(32.5%) 월소득 100만원 이하(32.2%)는 부동산 가격 급등을, 대구 경북(29.4%)은 부정부패를 정치권의 문제보다 훨씬 심각한 장애요인으로 꼽아 눈길을 끌었다.
일부 응답층에서는 관심 분야에 따라 우선순위에 차이를 보였다. 50대(30%) 60대 이상(30.3%) 주부(29%)는 정치권에 이어 부동산 가격 급등을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20대(31.1%) 서울(27%) 대전 충남 충북(27.7%) 농ㆍ임ㆍ어업(32.4%) 블루칼라(30%), 한나라당 지지(26.3%) 이명박 후보 지지(26.7%) 보수 성향(25.7%)은 부정부패를 장애요인으로 꼽는 응답이 많았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 김대중 정부, 발전 기여도 1위
1987년 이후 한국 사회 발전에 가장 많이 기여한 정권은 김대중 정권으로 조사됐다.
응답자들은 김대중 정권(40.7%)에 이어 노무현(15.3%) 노태우(9.2%) 김영삼(8.4%) 정권 순으로 한국 사회 발전에 공헌했다고 평가했다. ‘사회 발전에 기여한 정권이 없다’는 답변과 무응답자는 26.3%였다.
김대중 대통령이 이끈 국민의 정부가 우리 사회 발전에 가장 많은 기여를 했다는 의견은 모든 연령ㆍ지역ㆍ직업별 응답자층에서 1위였다. 특히 호남(65.8%) 30대(45.3%) 학생(53.6%) 자영업자(47.6%) 소득 200만원대(46.5%)에서 지지가 높았다.
또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지지자(34.9%)나 자신의 이념 성향을 보수라고 밝힌 사람(32.6%) 가운데서도 김대중 정권의 사회 발전 기여도가 1위였다. 1997년 첫 여야 정권 교체를 이룬 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공로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20대(22.2%) 충청(25%)에서 상대적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60세 이상(9.7%) 대구 경북(10.6%)에서는 지지가 낮았다. 노태우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 기반이었던 대구 경북(16.0%)에서 2위를 차지했고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는 50대(10.9%)에서 2위에 올랐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 20·30대 '복지'… 40대 이상은 '성장'
"성장이냐, 복지냐." 시대정신을 가늠하는 양대 정책 아젠다에 대해 국민의 의견은 팽팽히 맞섰다.
'경제성장과 복지정책에 대해 당신의 의견은 어느쪽에 더 가깝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8.8%는 '복지예산을 줄여서라도 경제성장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답한 반면 47%는 '경제적 약자를 위한 분배가 우선이므로 복지에 치중해야 한다'고 밝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응답을 했다.
연령별로는 20대(55%)와 30대(49%)가 복지를 택했고, 40대 이상(40대 52.4%, 50대 51.8, 60세 이상 50.2%)은 경제 성장쪽으로 기울어 세대별 인식 차이도 드러냈다.
경제성장과 복지에 대한 선택은 정치 및 이념 성향의 차이로 나타났다. 복지우선 정책은 자신을 진보성향이라고 응답한 사람 중 58.7%가 지지한 반면 보수 성향의 응답자는 39.8%만이 지지해 20%포인트 가까운 격차가 났다. 반대로 성장우선 정책은 이념적 보수성향 응답자 중 57.9%가 지지했고 진보계층에선 39.3%에 머물렀다.
또'복지에 치중해야 한다'는 응답은 민주노동당 지지(73.5%) 진보성향(58.7%) 블루칼라(60.3%) 학생(59.3%) 계층에서 높게 나타난 반면 '경제 성장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답은 한나라당(54.2%)과 민주당(51.2%) 지지층, 가구소득 월 400만원 이상의 고소득층(56.4%%)에서 높았다. 그러나 월 101만~200만원의 저소득층은 39.0%만이 성장 중시 정책을 찬성했다.
우리 국민의 이념성향과 관련, 자신을 진보라고 대답한 사람(34.54%)이 보수로 분류하는 사람(27.9%)보다 더 많았다. 자신을 중도라고 대답한 사람은 33.7%에 달해 계층별로는 '진보>중도>보수'의 순이었다.
진보는 20대 48.6%, 30대 39.9%, 40대 33.3%, 50대 20.6%, 60세 이상 18.8% 등 연령이 낮아질수록, 대재 이상 41.8%, 고졸 32.6%, 중졸 이하 17.4% 등 고학력일수록 높게 나타났다. 20대와 30대에선 진보가, 40대에선 중도(35.7%)가, 50대에선 보수(39.9%)가 각각 가장 많았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 "IMF이후 삶의 질 향상됐다" 35% "더 나빠졌다" 32%
삶의 질이 향상됐는가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비교 기준을 20년 전(1987년)으로 할 때와 10년 전(97년)으로 할 때 큰 차이가 났다.
응답자 10명 중 절반 이상(57.5%)은 20년 전에 비해 삶의 질이 향상됐다고 봤다. 각각 8.1%와 49.4%가 '매우 향상됐다' '대체로 향상됐다'고 평가했다. '변화가 없다'는 응답은 21.2%,'나빠졌다'는 대답은 20.8%였다.
화이트칼라(70.2%) 학생(76.5%) 대재 이상(66%) 월 소득 301만~400만원(68.4%) 401만원 이상(68%) 등 고학력 고소득 계층일수록 20년 동안 삶의 질이 향상됐다는 인식이 평균(57.5%)을 넘어섰다.
연령별로는 20대 68.3%, 30대 60.4%, 40대 54.5%, 50대 46.2%, 60대 53.7% 등 나이가 적을수록 긍정적이었다. 정치ㆍ이념 면에선 대통합민주신당 지지자(69.4%)와 진보 성향(64.5%)이 20년 동안 삶의 질이 나아졌다고 인식한 비율이 높았다.
20년 전에 비해 못 살게 됐다고 느낀 응답자 중엔 50대(32.8%)와 블루칼라(33.2%)가 평균(20.8%)을 넘었다.
10년 전인 외환위기 이후 삶의 질이 향상됐냐는 질문에는 35%만이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변화가 없다' '나빠졌다'는 응답은 각각 32.7%, 32.1%였다. 외환위기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음을 드러낸 것이다.
10년 간 삶의 질이 향상됐다는 의견을 보인 응답자는 20년 동안에 대해 같은 인식을 한 계층과 마찬가지로 화이트칼라(38.4%) 광주 전남 전북(39.4%) 대재 이상(37%) 월 소득 301만~400만원(42.2%) 30대(37.5%)에서 많았다. 부정적인 입장은 자영업(42.8%) 월 소득 201만~300만원(39.3%) 서울(35.9%) 50대(38.1%)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 "민주화세력 위기다" 48% "아니다" 45%
1987년 이후 민주화 세력이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10명 중 7명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화 세력의 위기론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비슷했다.
민주화 세력의 역할이 긍정적이었다는 응답은 67.3%로 부정적이었다는 의견(27.1%)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긍정적 평가는 20대(75.6%) 30대(75.4%) 광주 전남 전북(73%) 화이트칼라(76.6%) 학생(84.2%) 대재 이상(76.8%), 진보 성향(79.4%)에서 두드러졌다.
부정적인 평가는 60세 이상(34.2%) 부산 울산 경남(32.6%) 농ㆍ임ㆍ어업(31.6%) 주부(33.1%) 중졸 이하(39%) 보수 성향(37.2%)에서 높게 나타났다.
민주화 세력 또는 진보 세력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한다'(48%)는 의견이 '동의하지 않는다'(45.3%)보다 약간 우세해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동의 의견은 30대(53.8%) 40대(52.9%) 서울(54.7%) 자영업(52%) 학생(54.8%) 월소득 401만원 이상(54.7%)에서 높았다. 반대 의견은 20대(48.4%) 대구 경북(47%) 부산 울산 경남(46.8%) 블루칼라(52.6%) 고졸(52.9%)에서 많았다.
위기론의 원인으로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고 과거의 민주화 담론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24.8%로 가장 많았다.
이어 '순수성 도덕성 상실'(19.3%) '역량 부족으로 성과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서'(19.2%) '보수 세력과 보수 언론의 집요한 공격'(17.8%) '분파주의로 인한 지지 기반 약화'(12.9%)의 순이었다. 특히 30대(28.6%) 부산 울산 경남(23.8%) 화이트칼라(26.4%)는 민주화 세력의 역량 부족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반면 20대는 분파주의(23.4%) 40대는 보수 세력과 보수 언론의 공격(25.8%), 60세 이상은 순수성 상실(22.9%)을 가장 많이 지적해 세대별로 의견이 갈렸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 시대정신 여론조사를 보고…
시대정신이란 한 시대의 문화적 소산에 공통된 인간의 정신적 태도, 양식 또는 이념을 말한다. 과거를 성찰하며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가치의 집약, 그것이 바로 시대정신이다.
해방 이후 60여년동안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은 건국(1945~60년) 산업화(60~87년) 민주화(87~2007년)로 이어져 왔다. 나라를 새롭게 세우고(건국), 먹고 살기 위한 경제발전을 추진하며(산업화), 인권과 민주주의를 모색해 온 것(민주화)은 이 땅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지상 과제였다.
시대정신이라고 해서 물론 모두 온전히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현대사를 돌아봐도 그것은 대부분 불완전하게 달성된 것으로 나타나 왔다.
건국은 분단국가의 형성으로, 산업화는 정치적 억압 및 사회적 배제를 수반한 공업화로, 민주화는 경제ㆍ사회적 개혁을 제대로 성취하지 못한 민주주의로 진행돼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정신은 한 사회가 나가야 할 사상적 지표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과연 민주화 20년을 맞이한 현재 우리 사회가 가져야 할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이번 조사 결과는 민주화 시대가 마감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지난 20년에 대한 평가가 그렇게 부정적이지는 않지만 민주화가 여전히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4.6%에 불과했다. 절반이 넘는 53.8%는 경제성장을 시대정신으로 선택했으며 사회적 평등, 한번도 평화, 세계화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이런 경향은 차기 대통령이 가장 우선시해야 할 정책을 묻는 항목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경제성장(37.2%)과 일자리 창출(21.2%)이 압도적인 선택을 받은 반면, 복지정책 강화(7%)와 한반도 평화 구축(5.4%)은 상대적으로 낮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대다수 국민의 관심이 민주화에서 성장과 부국(富國)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국민 다수가 이렇게 성장과 일자리에 큰 관심을 갖게 된 원인은 아무래도 97년 외환 위기 이후 경제적 삶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는다고는 하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구체적인 삶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팍팍해 지고 있다. 청년실업의 증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확대, 기업의 일상화된 구조조정, 고령화의 진전에 따른 재취업 문제 등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대한 절대적인 열망과 믿음을 강화해 왔다.
시대정신을 이끌 주체는 다름 아닌 정치적 리더십이다. 국민 다수가 성장을 원한다면 리더십은 어떤 성장을 할 것인가를 제시해야 한다.
최근 흐름을 보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경제 살리기'를 내세우고,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차별 없는 성장'을 강조하며,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은 '사람 중심 진짜 경제'를 주장한다. 남은 대선 기간에 시대정신과 미래 가치에 대한 더욱 활기차고 생산적인 토론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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