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은 숲과 나무를 무척 좋아했어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나무가 마치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고 쓰기도 했죠.”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5곡)이 담긴 첼리스트 양성원(40ㆍ연세대 교수)의 새 음반(EMI) 표지는 사진작가 배병우가 찍은 소나무다. 대학 캠퍼스의 푸른 나무 아래서 만난 그는 “베토벤의 음악을 최대한 앞세우기 위해 표지에 내 사진을 넣지 않았다”고 말했다.
양성원은 완주를, 혹은 완주에 도전하기를 즐기는 연주자다. 2년 전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을 음반에 담은 데 이어 올해는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을 녹음했다. 한국 첼리스트로는 처음이다. 베를린 음대 교수인 피아니스트 파스칼 드봐이용이 호흡을 맞췄다.
양성원에게 이번 음반은 “오랜 꿈에 다가가는 과정”이었다. 그는 20년 전 베토벤 소나타를 처음 연주했을 때 난해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매년 독주곡이든 실내악곡이든 교향곡이든 베토벤을 연주하기로 결심했다. “마흔, 쉰이 됐을 때 재도전하는 길도 있었지만 기다리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며 바흐 전곡을 녹음하던 해에도 어김없이 ‘임무’를 수행했다.
베토벤을 향한 도전에 힘을 실어준 것은 베토벤이 남긴 글이었다. “베토벤은 청력을 잃은 후 모든 대화를 글로 했기에 메모나 편지 등을 많이 남겼어요. 악보에서 음악을 느낀다면, 글에서는 인간을 느낄 수 있었죠.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강인함과 영혼의 성숙함은 본보기가 됐습니다.”
음반 뿐 아니라 실연으로 그의 완주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베토벤 첼로 소나타 5곡을 하루에 연주하는 다음달 4일 오후 4시 LG아트센터 연주회다. 2시간 10분의 연주와 음악 칼럼니스트 유형종씨의 해설, 두 번의 휴식을 포함해 무려 4시간동안 이어진다.
3번을 연주한 후 후기 소나타 2곡을 연주하기에 앞서서는 한 시간을 쉰다. “베토벤의 영적인 세계가 담긴 후기 소나타들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연주자도 정신적인 준비를 해야 하고, 관객들도 음악을 소화하는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간단한 식사도 하실 수 있겠죠.”
양성원은 베토벤의 마지막 첼로 소나타인 5번을 가장 마지막에 녹음했다. 그만큼 부담이 컸다는 뜻이다. 후기 소나타 2곡이 만들어진 1815년은 베토벤에게 최악의 시기였다.
청력을 완전히 잃은 데다 경제적 지원이 끊겼고, 2년간 이렇다 할 작품을 쓰지 못하고 방황했다. 하지만 이를 딛고 두 곡의 첼로 소나타를 완성한 후 교향곡 9번 <합창> 같은 걸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합창>
그는 “베토벤 후기 소나타를 들으면 고통스런 상황을 이겨내려는 몸부림과 의지가 절절하게 느껴진다. 특히 5번 2악장은 거장이 말하는 인생이 들어있는, 평생을 두고 연주해야 할 음악”이라고 했다.
다음 완주 대상을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얼마 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마라톤 풀코스 완주에 도전하려고 한다는 것. 양성원은 “무엇을 완주한다는 것은 새로운 것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같다”면서 “장기적인 계획을 짜놓는 것이 나에게는 살아가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02) 2005-0114
김지원기자 eddi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