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과점 기업의 가격결정 남용 행위에 대한 규제 강화를 추진하던 공정거래위원회가 ‘암초’에 부닥쳤다.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가 18일 경제1분과 회의를 열고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심의한 결과, 이중 ‘가격남용 규제강화’ 부분에 대해서 ‘철회 권고’ 결정을 내렸다.
공정위가 추진했던 시행령 개정안의 핵심은 현행 시행령에서는 공정위가 독과점기업의 부당한 ‘가격의 변경’ 행위만을 제재할 수 있으나, 부당한 ‘가격의 결정 및 유지’도 제재할 수 있도록 규정을 강화하는 것이다. 즉, 독과점 사업체가 가격을 올리거나 내릴 때 뿐 아니라, 가격을 최초로 결정하는 것과 현행 가격이 적정한지 여부도 공정위가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규개위는 “공정거래법과 시행령이 상충되는 부분이 있고 외국에도 유사한 규제 사례가 있다는 공정위의 개정 취지는 이해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규제도 폐지하는 추세에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결정했다. 이는 가격변경 행위만 제재하는 현행 시행령을 그대로 유지하라는 의미이다.
그 동안 과잉규제라며 강력 반발해오던 재계로서는 당연한 결정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 경쟁법 전공 변호사는 “치열한 시장 경쟁에서 승리한 기업이 시장 지배적 지위를 누리고 이에 따른 초과 이익을 얻는 것은 정당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공정위의 개정 시행령이 시행되면 일본에서는 9,500엔(약 7만4,000원)인 토익시험 수험료가 한국에서는 12만5,000원(필기ㆍ청취ㆍ구술 포함)으로 비싼 것에 대해 토익 시행사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부당이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제재할 수 있게 된다는 것. 하지만 제도적 진입장벽이 없는 한ㆍ일간 영어능력시험시장에서 토익 시행사는 장기간의 연구ㆍ개발과 치열한 경쟁을 거쳐 각 시장 별로 최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가격을 결정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반면 공정위는 가격남용 규제강화는 급변하는 시장환경에서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유선방송 시장의 경우처럼 일단 독점적 지위를 확보한 기업은 단위 생산 당 별다른 추가비용 없이 가격을 무한정 올릴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독점적 지위를 더 공고히 해 결국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토익 수험료의 한ㆍ일 간 차이 역시 시장 외적인 요소가 많이 좌우된다고 주장한다. “국내 토익 시험료가 부당하게 높다”는 지적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직후 토익 시험 주관사가 필기시험만 분리해서 볼 수 있도록 제도를 고쳐 사실상 수험료를 인하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라는 것.
최근 공정위 입장을 지지하는 성명을 낸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은 “공정위의 정당한 시행령 개정시도에 대해 재계 뿐 아니라 산업자원부 등 정부 내부에서도 부정적인 입장이 많았던 것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규제개혁위가 규제완화라는 틀에 갇혀 정당한 규제신설에 대해 소극적 자세를 보인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공정위는 규개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가격남용규제 방침을 완전히 접을지, 아니면 내용을 일부 수정해 다시 추진할지 숙고중이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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