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의 노무현 후보와 2007년 현재의 정동영 후보는 똑같이 국민경선을 통해 여권 최대정파의 대표주자로 떠올랐지만 여러모로 처한 상황이 판이하다. 5년 전 노 후보는 파격적인 국민경선제의 최대 수혜자이자 상징 인물이었다.
반면 정 후보는 경선과정에서 불거진 불법 동원선거 논란으로 국민경선의 의미가 상당 부분 퇴색했다. 대체적으로 노 후보는 당시 당내기반이 취약하고 지지율이 높았지만, 정 후보는 당내 일정기반이 확고한 반면 지지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
2002년 4월27일 선출된 노 후보는 점차 지지율이 상승해 한때 60%대까지 오른 적도 있다. 지지율이 급락하는 위기가 있었지만 그에게는 후보선출 이후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하기까지 6개월이 넘는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정 후보는 대선까지 고작 두 달의 밖에 남지 않았다. 과거 3당 합당에 반대한 바 있는 노 후보는 후보선출 직후 상도동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을 찾아가 "총재님이 일본 다녀오시면서 사다 주신 시계를 아직도 차고 다닌다"고 말했다가 범여권 지지층의 호된 질책으로 한동안 고전했다. 6월 월드컵 열기를 거치며 정몽준 후보가 30%선까지 떠오르면서 자신은 15%대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정 후보가 특히 열악한 점은 현직 대통령과의 관계다. 정치컨설팅사 '폴컴'의 이경헌 이사는 "2002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인제 후보에 대한 지원을 접고 노 후보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등 후보가 이니셔티브를 쥐는 전형적인 임기 말 대통령과 여권후보의 관계였다"면서 "반면 정 후보에겐 노 대통령이 '(경선과정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잘 껴안으라'는 말을 할 만큼 전례없는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고 평했다.
이 이사는 그러나 "노 후보 때 정몽준이란 대안이 있었고, 지금 여권도 문국현의 탈출구가 있지만 2002년 후단협 실패의 학습효과로 정 후보의 당내 화합책 성공 전망은 긍정적"이라고 내다봤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정 후보의 단일화 전략에 대해 "2002년 처럼 노무현 정몽준 후보가 동시에 20%이상 지지율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정 후보가 독자적으로 치고 나가 흡수통합 방식의 단일화하는데 주력해야한다"고 말했다.
박석원 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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