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미술시장에서 이중섭은 죽었다.” “유족 소장 작품도 믿을 수 없다.”
검찰이 이중섭, 박수근 화백의 미공개작 2,800여점을 모두 위작으로 결론내렸다는 소식이 알려진 17일 미술계는 크게 술렁였다. 특히 2년여 동안 계속된 검찰수사에서 이중섭 화백의 아들이 위조ㆍ유통 과정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나 미술계의 충격은 한층 더했다.
충격에 빠진 미술계
이중섭의 작품은 검찰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 2005년 10월 이후 미술시장에서 이미 거래가 뜸해진 상태다. 당시 검찰이 이 화백의 차남 이태성(58)씨와 한국고문서연구소 명예회장 김용수(69)씨로부터 압수한 작품 일부에 대해 위작 판정을 내리자 선뜻 사려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소장자도 경매 유찰로 인한 가치 폭락을 우려해 시장에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이중섭의 작품이 다시 시장에 한두 점씩 나오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검찰이 김씨로부터 압수한 1,070여점이 모두 위작인 것으로 밝혀지자 미술시장엔 “이제 이중섭 작품의 거래는 끝났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강남의 한 화랑 대표는 “이런 상황에서 어느 컬렉터가 이중섭의 작품을 사겠냐”며 “모처럼 활황을 누리는 미술 시장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특히 2005년 3월 이씨의 의뢰로 위작을 경매에 내놓았다가 환불과 대표이사 사퇴 등 홍역을 치른 서울옥션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옥션 관계자는 “출처 감정이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해 유족의 말을 믿고 경매를 진행했는데, 아들이 위조 과정에 가담했다니 놀랍고 당황스럽다”면서 “사건 이후 작고 작가의 작품 중 미공개작은 책이나 전시 도록에 실렸던 것이 아니면 경매에 올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위작유통 피해 우려
감정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진품의 수는 이 화백 350~420점, 박 화백 500점 정도. 그러나 시중에 돌아다니는 두 화백의 위작은 이보다 많은 1,000여점에 이를 것으로 추산돼 가짜 그림을 고가에 매입한 피해자들이 속출할 가능성도 있다.
인사동의 한 화랑 대표는 “시중에 나도는 위작들 중 절반 정도는 값싼 졸작들이지만 유족까지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선의의 피해자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며 “위작 사태를 막기 위해 전문적인 감정인력 양성과 함께 작가별 전시 기록와 소장처, 재료, 크기, 거래내역 등의 내용을 담은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최초로 위작 시비를 제기했던 최명윤 명지대 교수(문화재보존학)는 “검찰 수사를 통해 누가 작품을 위조하고 전시, 판매, 유통 했는지를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 김ㆍ이 공모배경 초점
검찰은 이씨가 김씨와 위조 및 유통을 공모한 것으로 보고 그 배경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2005년 8점의 작품을 서울옥션에 내놓을 당시 “50년 전부터 소장해 온 아버지 작품”이라고 주장했지만 수사 결과 모두 이씨가 김씨로부터 건네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두 사람이 10여년 전부터 알고 지낸 점 등으로 미뤄 ‘이씨가 일부 작품을 공개해 사회적 이목을 끈 뒤 김씨가 보유한 위작을 시장에 대량 유통시켜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 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있다.
김씨는 “70년대에 일괄 구입한 진짜 작품들”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은 작품 대부분이 80년대 이후 생산된 물감으로 그려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김씨가 서울 인사동, 황학동 등에서 수집한 그림에 가짜 서명만 덧붙였거나 그림 제작을 위한 ‘위조공장’을 운영했을 가능성도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다음 주 초 김씨에 대해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이씨(일본 국적자)에 대한 조사를 거쳐 이 달 내에 최종수사결과를 발표할 방침이다.
고주희 기자 orwell@hk.co.kr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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