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의 첫 인상은 기묘했다. 착륙하기 직전 비행기 창 밖으로 먹구름이 잔뜩 끼더니 한 두 방울 빗방울이 맺혔다. 그런데 반대편 차창 밖은 푸른 하늘이 아니던가. 물론 빗방울도 없었다. 파란 하늘과 빗방울이 공존하고, 하루에 사계절을 보여준다는 ‘남반구의 런던’ 멜버른의 날씨였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지가 캐나다 밴쿠버 다음으로 가장 살기좋은 도시로 꼽은 멜버른은 호주의 자존심이다. 이코노미스트>
멜버른이 크게 성장한 건 19세기 중반, 주변에 금광이 발견된 덕분이다. 1830년 경쟁 도시인 시드니 인근에서 은광이 발견되자 인구가 그 쪽으로 몰렸다. 당시 멜버른 총독이 2,000 파운드의 현상금을 걸었다.
금광을 발견하면 현상금과 함께 채광 선점권을 주겠노라고. 이후 사람들은 샅샅이 주변을 뒤져 마침내 엄청난 금맥을 발견했다. 황금을 좇아 전세계에서 골드러시가 이뤄졌다.
당시 금광 주변에선 흐르는 물에 세수를 하면 얼굴에 남아 버석거리는 것이 죄다 사금이었고, 발길에 차이는 건 금 덩어리였다고 했다. 멜버른에서 1시간 30분 거리인 발라랏의 소버린힐은 당시 금광 마을을 재현한 호주판 민속촌이다.
자원봉사자들을 주축으로 운영되는 이곳에서는 금광의 갱 안에 들어가 보거나, 개울에서 사금채취를 체험할 수 있다. 사금 체험장에는 매일 일정량의 금가루를 뿌려놓기 때문에 조금만 공을 들이면 ‘내가 캔 금’을 챙겨갈 수 있다.
단데농의 퍼핑빌리 증기기관차도 호주의 과거를 관광자원화한 곳이다. 단데농은 멜버른 시민들에겐 ‘뒷동산’ 같은 곳. 단데농산의 유칼립투스 원시림을 뚫고 올라가는 100년 넘은 빨간 증기기관차가 퍼핑빌리다. 목재 수송의 역할이 사라져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할 뻔한 퍼핑빌리는 시민들의 보존 노력 덕택에 관광열차로 변신, 지금껏 석탄으로 땐 하얀 수증기를 내뿜으며 ‘칙칙폭폭’ 내달리고 있다.
운전, 정비 등 핵심인력을 제외하고는 60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퍼핑빌리의 운영을 맡는다. 벨그레이브역이 출발역. 종점인 젬부룩까지 24.5km이지만 대부분 짧은 일정의 관광객은 첫번째 정차역인 멘지스크릭까지 30분 정도만 타고 간다. 좁은 협궤 열차의 난간에 걸터앉아 발을 차창 밖으로 쭉 빼놓고는 느릿느릿 호주의 원시림을 지나는 맛이 일품이다.
멜버른 인근 필립아일랜드는 호주인들의 지독한 자연보호의식을 엿볼 수 있는, 사람보다 동물이 우선인 섬이다. 뭍과 연륙교로 연결돼 있다. 야생의 생태계 그대로를 보존하기 때문에 관광객은 그저 동물에 땅에 잠시 들린 객일 뿐이다. 필립아일랜드 서쪽 끝 노비스는 물개를 관찰하는 곳이다. 전시관 밖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해안 절벽을 가득 덮은 갈메기떼의 장관에 압도당한다.
코알라보호센터에선 온종일 잠만 자다 가끔 깨어나 유칼립투스 이파리를 따먹는 코알라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필립아일랜드의 하이라이트는 펭귄 퍼레이드다. 세계에서 가장 작다는 30cm 크기의 ‘리틀 펭귄’의 저녁 귀환을 맞이하는 행사다. 이 펭귄들은 섬에 둥지를 틀고 해 뜨기 전 바다로 나가 해가 진 직후 섬으로 돌아온다.
바다에서 나온 펭귄들은 군대의 소대 병력 단위로 움직이듯 10~20마리씩 그룹을 지어 차례대로 뒤뚱뒤뚱 걸음을 옮긴다. 자연의 펭귄보다 놀라운 것은 그들의 퍼레이드를 구경나온 관광객이다.
차가운 바닷바람과 이슬비를 아랑곳하지 않고 모두들 숨죽이며 퍼레이드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플래쉬 불빛이 펭귄의 눈에 치명적이라 사진, 비디오 촬영은 엄격하게 금지된다.
멜버른=글ㆍ사진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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