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대선 가도에서 친노(親盧) 세력의 도움이 필요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로서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 복원이 절실하지만 그리 녹록치는 않을 것 같다.
정 후보는 열린우리당 해체 문제로 대립한 후 5개월 만에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었으나 노 대통령은 팔짱을 낀 채 맞잡아주지 않았다. 앙금이 가시지 않았다는 얘기다.
정 후보는 16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노 대통령과는 통합 문제에 대해서만 의견이 달랐다"며 "신당을 만드는 데 앞장선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지만 인간적으로 대단히 미안하다"고 사과의 뜻을 표시했다.
15일 노 대통령이 정 후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정 후보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잘 껴안고 수습을 잘 하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실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 후보의 화해 제스처에 노 대통령은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정 후보가 참여정부와 우리당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내리는지를 지켜 본 뒤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노 대통령과 정 후보의 만남이 논의되고 있는데 이는 화해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전제한 뒤 "먼저 우리당 해체 과정과 (신당의) 경선 과정에서 생긴 갈등과 상처가 풀리고, 화해가 이뤄진 뒤 정 후보 측에서 회동 요청이 온다면 그때 검토할 계획"이라고 선을 그었다.
천 대변인은 정 후보의 사과 표명에 대해서도 "앞으로 (우리당 해체에 대한) 정 후보의 입장이 솔직하게 개진되지 않겠느냐. 좀 더 보고 난 뒤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계 복원에 대한 분명한 선결 요견을 제시한 것이다.
정 후보로서는 반 한나라당 연합의 중심에 서기 위해 노 대통령의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후보 단일화를 앞두고 친노 진영과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과의 연대설이 심심찮게 흘러나오는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노 대통령과의 관계 재설정은 더욱 시급한 현안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생각은 좀 다르다. 당장 정 후보에게 등을 돌리거나 다른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지는 않겠지만 정 후보에 대한 지지 역시 유보하면서 여권의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친노 세력의 정치적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선택을 하겠다는 의도인 듯하다.
노 대통령은 향후 문 전 사장이 지지율에서 정 후보를 추월하고, 친노 세력이 대거 옮겨가 여권의 단일 후보로 문 전 사장을 옹립한다면 그에 대한 지지를 표시할 것으로 보인다.
친노 세력이 정 후보 밑에 있을 때보다 문 전 사장 아래 있을 때 활동 공간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정 후보가 끝까지 앞서 나간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그에 대한 지지 의견을 표명해 친노 세력의 최후 근거지라도 확보하려고 할 것이다. 노 대통령과 정 후보와의 제2의 전쟁이 시작된 셈이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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