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신경숙(44)씨는 사춘기 시절 서울에 올라와 구로구 가리봉동 쪽방에 살았다. 낮에는 구로공단 '동남전기'라는 회사에서 하루종일 스테레오 기기의 나사를 박고 밤에는 영등포여고에서 운영하는 야간 산업체 특별학교를 다녔다. 서른 일곱개의 단칸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벌집에서 오빠 둘과 외사촌 언니까지 4명이 함께 살았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의 자전적 소설 '외딴방'은 1979년부터 3년간 외딴방 주변에서 만난 사람들의 얘기이다. 가난과 절망, 슬픔과 고통을 숙명처럼 여기며 살았던 이들 속에서 그는 용케도 작가로서 꿈을 키우고 실현했다.
그가 이 소설을 발표한 때는 1990년대 중반. 소설가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굳히던 시점이었다. 이 즈음 가리봉동 벌집촌은 한때 6만여명에 이르는 여공들이 모여 살던 곳에서 수많은 가출 청소년들이 몰려드는 아지트로 변했다. 2000년 이후에는 '코리언 드림'을 꿈꾸는 재중동포들이 그 방을 물려받아 지친 몸을 뉘고 있다.
이 어둠의 땅이 몇 년 사이 새로운 양지로 뜨고 있다. 구로구가 낙후하고 칙칙한 이미지를 탈색하기 위해 앞장선 덕분이다. 5년 후인 2012년에는 60층짜리 초고층빌딩과 호텔, 컨벤션센터, 5,000세대의 최첨단 주택이 들어선다.
구는 최근 이 일대의 옛 흔적을 지우고 있다. 구로공단을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지하철 구로공단역을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이미 바꾸었고, 가리봉동 지명마저 변경하기 위해 공모중이다.
몇 년 전 한 국회의원 출마자는 구로구 이름마저 바꾸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던 걸 보면 이 지역 주민들이 공단이미지를 얼마나 부끄럽게 생각하는지 짐작이 간다.
주민들은 방송에서 '가리봉동 휘발유', '가리봉동 쌍칼' 등의 용어가 난무하고, 다른 지역에 비해 집값이 상대적으로 오르지 않은 것도 과거의 이미지탓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이곳을 개발하는 건 좋지만 이름까지 굳이 새로 지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가리봉이라는 마을 이름은 조선시대부터 수백년간 사용돼 왔다.
이 지역의 땅 모양이 바지 가랭이처럼 갈라져 있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수 년 전 이름이 바뀐 대구 파산동(호산동)이나 내환동(대흥동)처럼 부정적 의미를 연상시키는 것도 아닌데 법정동의 명칭을 바꾸는 건 아무리 봐도 씁쓸하다.
어린 시절 고생하며 살았던 사람이 나중에 잘 살게 됐다고, 지금의 내가 옛날의 나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름을 바꾸는 꼴이다.
게다가 동명 하나 개명하려면 수천만원의 비용과 함께, 본적, 주민등록, 인감, 지적, 병적 등 76가지의 문서 정리를 위해 공무원들이 몇 달간 매달려야 할 만큼 엄청난 행정력이 소모된다고 하니 보통 일이 아니다.
우리 누이들의 눈물과 땀이 뱄던 가리봉동의 화려한 변신은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그 이름마저 지우는 것은 가리봉동의 역사까지 화장해서 뿌려버리는 듯한 느낌이다. 신씨가 불우한 시절의 체험을, 한편의 훌륭한 소설로 엮어냈듯이 가리봉동을 활용하는 방안은 없을까.
'모든 게 잊혀져간 꿈이 되어 그 빛을 잃어가/…닿을 길 없는 가요 슬픈 마음뿐인 걸/잊어야 하는 가요 슬픈 마음뿐으로/그를 아는 사람들이 소리내어 찾지 않네.'(박노해의 시 '가리봉시장')
아무래도 가리봉동은 외딴방과 함께 그렇게 사라질 운명인가 보다.
최진환 사회부 전국팀장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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