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0월 17일, 미군이 황해도 신천에 들어갔다. 북한은 이날부터 12월 7일까지 52일 동안, 미군들이 신천군 주민의 1/4에 해당하는 3만 5,383명의 양민을 학살했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한국전쟁의 ‘신천 사건’이다.
황석영(64)이 한국전쟁 50주년이던 2000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한국일보에 연재한 장편소설 <손님> 은 이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그때 기자는 문학담당으로 원고를 맡았다. 손님>
황석영이 보내오는 원고에는 매일 헛것(유령)들이 떠돌고 주검들이 울부짖었다. 황석영은 북한의 주장과 달리 신천사건을 미제의 만행이 아니라 우리끼리의 살육, ‘한 동네서 오손도손 살던 사람들의 행악’으로 본다.
자생적 근대화를 이루지 못한 이 땅에 찾아온 사회주의와 기독교라는 외래 사상, 손님마마귀신에 사람들은 아예 몸을 내주고 서로 피로써 피를 부르는 참극을 빚었다는 것이다.
“동무는 정말 새로운 시대의 쓰레기요 아편장이야!”(사회주의) “너 이 새끼 우리 땅 뺏구 천년만년 리당위원장 해먹을 줄 알았네?”(기독교). 미군의 인천상륙, 중공군 참전 등 전황에 따라 그들은 서로를 죽였다. “저 새낀 수박이다, 아니다 사과다, 아니다 감이다, 진짜배기 청참외다, 하넌 농이 오가군 했디. 퍼랭이냐 뻘갱이냐, 아니문 뻘갱물 든 퍼랭이냐 퍼랭물 든 뻘갱이냐. 아무튼 물든 것덜언 다 쥑에야 되었다.”
하지만 “서로 죽이구 죽언 것덜 세상 떠나문 다 모이게 돼 이서”, 그 혼령들이 <손님> 에서 입을 열어 말하는 주인공들이다. 진지노귀굿 열두 마당을 소설 형식으로 해서 그들을 불러낸 황석영은 “아직도 한반도에 남아 있는 냉전의 유령들을 이 한 판 굿으로 잠재우고 싶다”고 연재 후 소감을 밝혔었다. 손님>
과연 그 유령들은 잠들었는가, 또 손님들은?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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