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때 광야에서…심장을 뛰게 하던 그 거친 목소리
6월 항쟁의 중심에 섰던 386세대보다는 어리지만 그들과 마찬가지로 민주화라는 ‘단물’ 이 생략된 청춘을 보낸 30대 중반에게 안치환의 의미는 각별하다.
그가 ‘노래를 찾는 사람들’ 시절 불렀던 ‘광야에서’ 를 통해 저항가요(민중가요)를 처음 접했고 1990년대 초반 거리에서 들었던 그의 노래 ‘타는 목마름으로’ ‘철의 노동자’를 기억하는 세대에게 안치환은 젊은 시절 끝내 놓을 수 없었던 희망의 끈을 노래한 가수로 남아있다.
‘귀족노조’가 노동운동의 순수함을 짓밟고 학생운동은 그 지향점을 잃어가는 시대. 세상은 더 이상 ‘투쟁’을 노래할 필요가 없다며 저항가요를 듣던 귀를 막아버린다. 더구나 붕괴하는 국내 음반시장의 귀퉁이에 놓였던 저항가요의 맥은 소수의 뮤지션들에 의해 간신히 명맥을 잇는 실정이다.
안치환은 그 소수의 음악인 중에 가장 대중적인 저항가수다(꾸준히 음반을 내는 거의 유일한 뮤지션). 비록 대중 대다수는 그를 포크가수, 혹은 록 가수로 분류하고 있지만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왼쪽에 둔다.
19, 20일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안치환과 자유-가을 콘서트> 를 갖는 안치환씨를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만나 이 땅에서 가장 잘 알려진 저항가수로 노래하는 의미를 물었다. 연평균 소득 2만 달러의 대한민국에서 왜 저항가요가 아직 필요한지에 대해 그는 다행히 확실한 답을 갖고 있었다. 안치환과>
스쿠터를 탄 남자가 골목을 달려 기자를 앞질렀다. 장을 봤는지 검은 봉지를 든 그는 먼발치에서 봐도 한눈에 안치환(42)씨다. 공연을 앞두고 연습에 한창이지만 틈이 나는 아침나절 남매를 챙기고 집안일을 돕는 안씨. 동네에 새로 개업한 중국집의 자장면 맛이 일품이라며 운을 뗀다.
■ 내가 만일…세상과 타협했더라면?
가수 안치환이 많이 변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투쟁을 외치던 그의 노랫말이 9개의 정규앨범을 내는 긴 시간 동안 나긋나긋해지고 말랑말랑해졌단다. “한 번도 대놓고 ‘나는 민중가요 가수’라고 스스로 얘기한 적은 없지만 남들이 이렇게 부르는 것을 항상 겸손하게 받아들여왔습니다. 저의 지향점과 뿌리는 변함없이 저항가요입니다. ‘안치환 노래’의 음악적인 범위는 계속 지켜오고 있습니다. 대중의 입장에서 이런 저의 노래가 크게 변했다고 느끼는 것은 방송에서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음악만 노출됐기 때문이겠죠. TV에 나와서‘철의 노동자’를 부르지는 못했으니까요. ”
사실 그의 앨범을 살펴보면 ‘투쟁가’들이 주로 담긴 1~3집의 분위기가 최근의 8집에도 고스란히 담겨있으며 3월에 발매된 9집에도 통일을 염원하는 곡들이 변함없이 목청을 높인다.
■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을 위해…저항은 쉬지 않는다
“사람들은 저항가요와 이를 부르는 가수들이 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꾸준히 노래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한가할 때는 이들과 어울려 술도 자주 마십니다. 다만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해서 눈에 띄지 않을 뿐이지요. 저항가요의 쇠퇴에 대해 이는 저항할 대상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말들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항가요의 출발이 군부독재였고 지금 그들이 없어졌다 해서, 민주화가 이뤄졌다 해서 저항할 대상마저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 넓은 의미의 인간해방, 통일, 여러 노동문제 등 노래운동이 다뤄야 할 삶의 모습은 무한합니다.”
안씨는 저항가요를 등한시하는 젊은 세대에 대한 아쉬움도 내비쳤다. “예전에 비해 많은 사람이 자신을 헌신하면서 음악을 하지 않습니다. 음악 좀 한다는 젊은 친구들은 전부 홍대 앞에 모여있죠. 과거 같았으면 이들 중 다수가 노래패 활동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도시 변두리의 불만을 노래로 털어내는 펑크 음악을 하는 친구들도 넓은 의미로 저항음악을 한다 말할 수 있지만 문제는 이들이 스스로 그런 음악을 노래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 다시 광야에서…우리음악 고유의 경쟁력을 찾아
그는 2년째 대금 공부에 빠져있다. 팝의 형식에 묶여있는 우리 대중음악의 고유한 경쟁력을 만들려는 작업을 위해서다. 몇 달 전부터는 딸아이가 다니는 학원을 오가며 피아노를 정식으로 배우고 있다. 얼마 전 체르니100을 마쳤단다.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가요가 대중가요의 전부가 아닙니다. 80년대의 너무나 서정적인 저항가요, 90년대의 격렬했던 투쟁가요들을 편견 없이 들어보면 얼마나 이 노래들이 일상의 위안이 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