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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하버드대 총장이 말한 것

입력
2007.10.1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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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드루 파우스트(60) 하버드대 총장의 취임사가 한국 언론에 크게 소개됐다. 인터넷으로 취임식을 보면서 맥이 탁 풀렸다. 경쟁력 강화를 외치며 학교 발전 방안을 내놓을 줄 알았는데 웬걸, 그게 아니었다.

미국사를 전공한 이 여성 총장은 우리가 생각하던 고전적인 대학의 이상을 강조하고 있었다. 좀 길지만 한국의 상아탑에서는 거의 잊혀져 버린 그 아련한 이상을 들어보자.

● 우리가 잊은 아련한 대학의 '이상'

"대학의 본질은 과거와 미래에 대해 특별한 책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또는 기본적으로 현재에 책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학은 다음 분기 성과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학생이 졸업 후 어떻게 되느냐에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대학이 관심을 쏟는 것은 평생을 좌우하는 배움, 수천 년의 유산을 후대에 물려주는 배움, 미래의 꼴을 형성해가는 배움입니다. 대학은 앞과 뒤를 동시에 바라봅니다. 그 때문에 대중의 즉각적인 관심이나 요구와 충돌을 빚지 않을 수 없고, 또 심지어는 그래야만 합니다."

취임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대학은 영구적인 것에 헌신합니다. 그런 식의 투자는 결과를 예측하거나 측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지요. 대학은 살아 있는 전통의 수호자입니다. (학교 내의 100개 가까운) 도서관과 박물관, 고전학부, 역사학부, 문학부 등은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우리는 그런 노력을 현재의 특정한 효용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를 기준으로 평가하려는 시도를 못마땅해 합니다. 우리가 그런 노력을 부분적으로 '그 자체만을 위해' 추구하는 이유는 그런 것이 여러 세기에 걸쳐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 왔기 때문이지 글로벌 경쟁력을 촉진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글로벌 경쟁력은 근자에 우리 사회에서 대학들이 한결같이 외치는 구호다. 2004년 5월 정창영 연세대 총장, 작년 8월 이장무 서울대 총장, 작년 12월 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의 취임사를 봐도 표현과 정도는 다르지만 세계 수준 대학들과의 격차를 절감하면서 경쟁력 강화에 온 힘을 쏟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대학 발전기금 모금이 총장의 핵심 과제처럼 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공급하고, 재정을 키우고, 경쟁을 강화해 교수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동안 경쟁력의 세계적 정점에 서 있는 대학의 총장은 "인간은 의미를 탐구하는 존재" 운운하며 고고한 이상을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기본적으로 돈 때문이다. 2005년을 기준으로 하버드대의 발전기금(적립금) 규모는 26조6,018억 원이다. 한국에서 제일 낫다는 서울대가 1,990억 원으로 하버드대의 0.75%도 안 된다.

그러니 학생 1인당 투입하는 학교 예산은 10~15배 차이가 난다. 속되게 말하면 배 부르니 여유가 생기고 그 여유를 가장 근원적이고 창조적인 데에 투입할 수 있는 것이다.

● 서울대 기금은 하버드대의 0.75%

그런데, 그러다 보면 오히려 엉뚱하게 가장 효용성 높은 성과가 툭툭 튀어나온다. 과학(학문)이라는 것이 밥벌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의 지적 추구로 할 때 가장 실용적인 결과가 나오는 법이다. 여유가 없으니 초조해지고 초조하다 보니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것에만 매달린다. 그러나 그럴수록 깊고 넓고 파급력 큰 성과에서는 멀어진다.

전임 하버드대 총장 로렌스 서머스(53)는 2001년 이 무렵 취임사에서 "우리는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것으로써가 아니라 우리가 행하는 것으로써, 그리고 우리가 축적해온 것이 아니라 기여하는 바로써 평가 받을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합니다"라고 말했다.

잘 생긴 갑부 집 아들이 이렇게 생각이 바르고 이상까지 드높다면 가난한 집 자식은 정말이지 따라잡기 힘들다. 우리 대학의 분발을 끊임없이 다그쳐온 교육 담당 논설위원으로서 파우스트 총장의 연설을 접하며 맥이 탁 풀린 이유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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