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대외 행보가 거침없다. 동유럽 미사일방어(MD) 계획, 이란 핵문제, 코소보 독립, 에너지 문제 등 전방위에 걸쳐 서구와 대립각을 세우며 ‘강한 러시아 재건’에 동분서주하는 모습이다.
지난 주 모스크바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콘돌리사 라이스 미국 국무, 로버트 게이츠 국방 장관을 만난 푸틴 대통령은 15일 독일로 날아가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어 곧바로 이란을 방문,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과 독대한다.
이란 대통령과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소련 시절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 이후 32년만에 처음이다. 2주 연속 국제 무대를 누비는 숨돌릴 틈 없는 그의 행보에 전 세계의 시선도 쏠리고 있다.
최근 행보의 하이라이트는 16일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과의 회담이다.
러시아 지도자의 수십년만의 첫 방문이라는 상징성도 그렇지만, 회담 결과가 서구와 러시아간 계속되는 기세 싸움의 향방을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란 핵 문제에 대한 서구의 점증하는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란에 10억 달러에 달하는 핵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다.
다만 핵 발전소가 핵무기 개발로 이용될 수 있다는 서구의 우려로 우라늄 원료 이전과 핵 발전소 완공은 미루는 상황이다. 이번 회담에서 푸틴은 이란에 핵 프로그램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선에서 ‘중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지만, 핵 발전소 완공 협약을 체결하는 등 초강수를 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회담 수위에 따라 서구, 특히 미국과 러시아 간 신냉전이 초래될 수 있다는 섣부른 관측도 나온다. 이 와중에 크렘린이 14일 “자살 폭탄 테러 세력이 이란 방문 기간 푸틴 대통령을 암살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는 내용을 흘려 그의 이란 방문을 더욱 흥미롭게 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와 미국에 대한 푸틴의 차별화된 대응도 눈 여겨 볼 대목이다.
9, 10일 모스크바에서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15일 독일 바스바덴에서 메르켈 독일 총리와 만난 푸틴 대통령은 양국의 경제 협력 및 우호관계 증진을 강조했다.
공교롭게 두 정상 모두 전임자와 달리 ‘친미’ 노선을 강조하며 ‘푸틴 때리기’에 앞장서 왔던 인물이다. 하지만 외신들은 이들의 정치적 의지와 달리 경제계는 러시아에 대한 투자 확대 등을 구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하고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도 푸틴과의 회동에서 “러시아의 친구”를 강조했다.
푸틴은 그러나 동유럽 미사일 방어기지 계획의 해법을 찾기 위해 러시아를 찾은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에겐 독설과 경고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에 대한 분리 대응으로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입지 확대를 겨냥한 행보란 분석이다. 26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리는 유럽연합(EU)-러시아 정상회담 역시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푸틴의 외교 무대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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