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동화책 <고양이 학교> 시리즈로 작년 프랑스 유수 아동문학상인 앵코륍티블상을 받는 등 국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김진경(54)씨. 고양이>
국내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성장소설 <빨간 기와> 의 저자로, 2004년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안데르센상 최종후보에 올랐던 차오원셴(曺文軒ㆍ53) 베이징대 교수. 한중 양국에서 아동ㆍ청소년 문학의 대표 작가로 활동 중인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빨간>
대산문화재단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개최한 한중문학인대회(11~17일)의 일환으로 13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린 한중문학포럼에 참석한 이들은 2시간 가량 만나 각자의 문학관, 동아시아 문학의 과제 등을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차오원셴=아이들을 위한 작품을 쓰는 것은 순수한 일이다. 그래서 나를 아동문학가로 부르는 것이 좋긴 하지만, 적절한 명칭은 아닌 것 같다. 난 독자층보단 예술성을 중시하는 창작을 하는데다, <하늘 표주박(天瓢)> (국내엔 <비> 로 번역)처럼 어린이가 보면 큰일나는 소설도 쓴다(웃음). 비> 하늘>
김진경=차오 선생의 <붉은 기와> <청동 해바라기> 를 읽었다. 농촌이 배경이어서 우리 세대에겐 공감이 컸고, 아이가 주인공일 뿐 아동ㆍ청소년 문학으로 한정지을 수 없는 보편적 문학성을 갖춘 좋은 작품이었다. 청동> 붉은>
차오원셴=감사하다. 김 선생의 <고양이 학교> 도 중국에서 인기가 높다고 들었다. 나는 중국 문단에서 특히 문학성에 천착하는 작가라고 자부한다. 많은 아동문학가가 ‘오늘의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감동을 줄 수 있나’를 고민한다. 고양이>
예전과 달리 새롭게 형성된 어린이 집단이 있다고 전제하는 셈인데, 나는 이 점에 회의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도덕적 의로움, 정감, 지혜와 아름다움에 감동한다. 아동문학을 비롯한 모든 문학은 영원하고 항시적인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김진경=선생과 입장이 다르다. 내 경우엔 70년대 후반부터 창작을 했다. 80년대로 이어진 격동기 속에서 문학보다는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 무엇일까가 내겐 더 중요했다.
그것이 때론 교육 민주화 운동(김씨는 전교조 창립을 주도한 해직 교사 출신으로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을 지냈다)이었고, 때론 글쓰기였다. 2000년대에 와서는 아동문학을 통해 문화의 서구 편향성이란 심각한 문제에 맞서고 있다.
차오원셴=아동문학이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책임이다. 나 또한 80년대에 “아동문학은 미래의 바람직한 인간을 양성하는 문학”이란, 당시로선 충격적인 정의를 내렸었다.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다. 문학은 인생의 초월적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고, 아동문학은 아이들에게 인생의 기초적 덕성을 마련해주는 것으로 족하다.
김진경=한국 아이들의 사고 구조나 가치관이 급변한 것은 90년대 초다. 그 핵심엔 근대 사회의 아동관이 있다. 아이들에게 주어진 최우선 과제는 서구 지식을 빨리 암기하는 것이고, 이런 지적 성장의 관점에서 이들을 평가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중국도 머잖아 이런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서구는 지식 생산자, 우리는 수용자’라는 생각에 익숙해질수록 탈산업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적 원천인 상상력이 심각하게 결핍된다. 그래서 판타지 형식을 빌어 <고양이 학교> 를 쓴 것이다. 부모들이 단편적 지식이 담긴 아동책을 선호하는 게 한국 출판시장인지라 처음엔 고전했다. 고양이>
차오원셴=부모들이 아동책 구매를 결정한다니 재미있다. 중국에선 아이들이 사달라는 책을 사주거든. 나도 관점은 다르지만 문학의 서구 편향성을 우려한다. 중국 문학의 전통은 심미(審美ㆍ아름다움을 추구함)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것이 미다. 톨스토이의 고전 <전쟁과 평화> 를 보면 전장에서 중상을 입은 안드레이 공작에게 삶의 의욕을 회복시키는 것은 조국도 제도도 아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전쟁과>
그러다가 서구 모더니즘 사조가 부흥하면서 서구는 물론, 중국에도 사상ㆍ이념의 깊이를 문학의 제1가치로 여기는 경향이 심화됐다. 노벨문학상도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후엔 미적 성취보단 이념성이 강한 작가가 독식하고 있다.
김진경=근대 문화 전반이 서구 위주로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권 작가들이 서구 중심주의를 어떻게 넘어서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논의할 시점이 왔다. <고양이 학교> 는 인간과 동물을 동격의 존재로 그린다. 고양이>
동아시아의 토템 신화에서 보면 자연스럽지만 프랑스 어린이들에겐 신선한 발상이었을 것이고, 그래서 그 나라 어린이 선정위원 5,000명의 투표로 뽑는 앵코?緻성自瓚?받았다. 동북아가 국경 같은 인위적 경계를 넘어 공동의 상상력과 문화적 상상력을 모색해야 한다.
차오원셴=내가 가르치는 석ㆍ迷?연구자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논문을 쓸 땐 아(雅ㆍ우아함)와 흥(興ㆍ흥겨움)란 딱 두 글자만 생각하라고. <시경> 에도 언급되지만 우아와 흥취는 중국 고유의 미학이다. 시경>
서양 미학에 맞설 만한 동아시아 만의 높은 비평적 기준을 세워야 한다. 문화 부흥을 위해선 국가의 부강도 중요하다. <해리 포터> 를 영국 작가가 아닌, 차오원셴이나 김진경이 썼다면 과연 성공할 수 있었을까. 해리>
글ㆍ사진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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