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수 공연물의 풍성한 잔치 ‘2007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막을 내렸다. 인간의 보편성을 정의 내리는 서구 중심의 시각과 불편한 자막 읽기, 비언어적 요소 치중에 지친 관객들이라면 이제 숨을 고르고 다시 외출을 준비할 때다. 우리 삶의 직접적인 문제들을 모국어로 들려주는 창작극들을 만나기 위해서.
극단 연우무대 30주년 기념공연 <해무> (김민정 작, 안경모 연출)도 그 중 하나다. 연극을 통한 사회적 발언과 역사 인식에 바친 극단의 연혁 못지않게 소극장 연극의 미학적 방법론 탐구를 수행해온 이 극단은 일종의 ‘해양 비극’으로 자신들의 삼십년을 자축한다. 해무>
만선을 소망하며 출항한 전진호는 흉어 속에서 빈 배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되자, 손실을 메우기 위해 조선족 출신 밀항자들을 태우게 된다. (연극적 처리에 의해 4인 배우로 압축한) 서른 명이나 되는 밀항자들은 해경의 추적을 따돌리는 과정에서 모두 질식해 죽는다.
그 중 한 선원과 눈 맞은 처녀 홍매만이 살아남는데 이 인물은 선원들의 욕망과 혼란을 가중시킨다. 시신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선원들은 죄의식과 착란에 휩싸이고, 광기와 폭력 속에서 그들의 내면과 배의 운명은 좌초되고 만다.
이번 공연에서 흥미로운 것은 이 극단이 선택한 작품의 성격이 한국연극제작시스템의 ‘삼두체제’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삼두체제는 작가, 연출가, 제작자 모두 남성 중심임을 의미하는 여성주의 연극 학자 수 엘렌 케이스의 용어다.) 여성작가가 썼으나 연극적 응시의 본질을 결정하는 것은 남성의 목소리며, 여성 배역은 고기잡이 어선이라는 공간 설정을 감안하더라도 남성의 성애적 욕망으로 약호화 되어 있다. 비극적 인식의 주체 또한 당연히 남성이며, 남자 배우들이 수행하는 주요 배역에 압도적으로 의존한다. 연우 연극의 그 많던 여배우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오늘날 연극 환경을 헤쳐 가고자 하는 극단의 의지가 ‘잘 짜인 극’식의 플롯을 구축하고 장르적 관습을 탐구하는 열의 쪽에 바쳐진 결과를 낳은 것은 아쉽다.
선원들의 삶의 조건을 유진 오닐의 해양극처럼 부조리한 인간 상황으로 발전시키기에는 선원들을 그린 통속적인 사실성이 가로막고, 인간성의 보편적 비극성으로 받아들이기엔 조선족 밀항사건이라는 소재의 현실감이 너무 짙다.
이 딜레마를 두고 공간의 실감과 인물들 내면과 상황을 음향효과 등 청각적 요소의 꼼꼼한 배치로 보완하려한 연출력에 귀 기울일 만하다. 특히 우정 출연한 배우 신철진의 몫이 눈에 띄는데 노역을 감당할만한 장년층 배우의 존재감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무대다. 11월 4일까지 연우소극장.
극작ㆍ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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