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ㆍ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는 가운데, 지난달 17일 유엔의 CSR운동기구인 ‘글로벌콤팩트’(Global Compact)’ 한국협회가 출범했다.
출범과 동시에 대기업을 포함한 90여개 단체가 협회에 가입하며 국내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일보는 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출범에 중심 역할을 한 인사를 초청, CSR운동의 당위성과 전망을 진단하는 좌담회를 가졌다.
좌담회에는 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초대 회장인 남승우 풀무원 사장, 지난 2년간 협회설립을 실질적으로 준비해온 문국현 유한킴벌리 전 사장,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가 참석했다.
문 전 사장은 대권에 도전한 정치인 아닌, CSR전문가로서 토론회에 나왔다. 참석자들은 “국내 기업환경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가로막는 최대변수는 기업의 비윤리 경영”라고 진단한 뒤 “기업들이 인권, 노동, 환경, 반부패 등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이윤추구도 가능한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창립 배경
문국현 = 글로벌콤팩트는 1999년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코피 아난 전 UN사무총장이 처음 제안했으며, 2000년7월 발족 이래 세계적으로 4,000개가 넘는 기업과 학계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난 7년간 글로벌콤팩트 운동에 관심이 소홀했지요. 그러다 올해 들어 급물살을 타기 시작해서 결국 지난 9월 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가 창립총회를 열고 남승우 풀무원 사장은 초대 회장으로 추대하게 된 것입니다. 반기문 UN사무총장도 매우 기뻐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남승우 = 처음에는 저도 CSR 운동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야간 CEO과정에서 문 사장을 처음 만나 이 운동에 참여하게 됐지요. 2001년 ‘CEO 지속가능포럼’이 만들어졌는데, 문 사장이 1기 회장이고 제가 2기 회장을 맡았습니다.
이후 2003년 만들어진 ‘기업의 윤리적 경영을 연구하는 모임’(일명 윤경포럼)의 발기인으로 참여했습니다. 작년부터 이 두 모임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해, 양쪽 기업들을 중심으로 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를 만들게 됐습니다.
문국현 = 제가 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설립을 추진했던 이유는 소비자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현재 세계적 구매 기관들은 환경친화적 기업에게서 상품을 사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기업으로선 비관세 장벽이 하나 더 생기는 셈이죠.
소니는 전선피복에 중금속 물질이 함유된 것으로 드러나, 유럽에서만 10억불 이상을 반품조치해야 했습니다. 반대로 글로벌콤팩트에 가입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생기게 됩니다.
많은 국가에서 친환경 제품을 우선 구매해주고, 사회책임투자(SRI) 펀드 등에서 자금과 기술을 투자해 줍니다.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간접자본은 도로 전기시설 등을 의미했지만, 후기자본주의시대에는 반부패 인권 환경 등이 새로운 사회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한국상황 진단
남승우 = 노동 인권 환경 반부패 등 4개로 이뤄진 글로벌콤팩트의 10개 원칙을 통해 우리나라를 되돌아보면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바로 10번에 언급된 부패 문제입니다.
실제 부패정도도 문제지만, 최근의 부패개선 정도가 국제사회에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게 더 큰 문제지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우리나라 부패지수 국가순위는 38위입니다. 중국(37위)보다도 우리나라가 더 부패했다는 겁니다. 심각한 문제에요. 우리가 부패하지 않다는 걸 세계에 알려야 합니다.
문국현 = 저는 10번 부패문제와 더불어 3번 노조의 권리문제가 가장 취약한 것 같습니다. 한국의 노조결성율은 한때 15% 정도였지만 최근에는 10%가 채 안됩니다. 세계적으로도 굉장히 낮은 수치죠. 재미있는 것은 한국 노사분규의 뿌리에는 부패 문제가 개입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노조가 회사 최고경영자의 부패에 대한 비밀을 아는 경우가 많아, 쉽게 해결될 갈등도 최악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 거죠. 부패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징벌적 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가벼운 벌금정도가 아니라 비리로 인한 이익전체를 환수하는 등의 강력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조동성 = 대기업들은 6번 ‘고용 및 업무에 있어 차별금지’를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대부분 기업이 안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와 외주 납품중소업체 문제를 의미하는 것인데요.
비정규직 문제만 해결한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외국에서는 외주가공 중소기업 문제에 대해서도 해당 대기업이 책임지는 것이 큰 흐름입니다. 예를 들어 얼마 전 나이키가 인도에서 아동 노동착취문제로 국제적 비난을 받았는데, 그 직접적 당사자는 나이키가 아니라 나이키에 납품하는 외주업체였습니다.
윤리경영이 창출求?새로운 기회
남승우 = CSR은 기업이 이윤추구 활동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사회적 위험’을 예방해줍니다. 존슨앤드존슨의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처럼, 기업의 존립 자체를 흔들 수 있는 사회적 위험을 윤리경영을 통해 예방하자는 것이죠. 보다 중요한 것은 윤리경영이 ‘사회적 책임’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사회적 기회’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P&G에서는 저개발국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저렴하면서도 질 좋은 생활용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저개발국 수십억 인구를 신규고객으로 만드는 새로운 사업기회를 창출한 셈이죠.
조동성 =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이윤추구의 효율성과 충돌하지 않느냐를 고민하는 기업도 없지 않습니다. 피터 드러커는 “목표는 다양해야 한다”고 말했죠. 다양한 목표 속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기업이 장수할 수 있습니다.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기업은 사회를 윤택하고 편리하게 하기 위해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기업은 생존할 이유가 없습니다. 즉 기업의 ‘이익추구’와 ‘사회책임’중 우선한 것은 당연히 후자입니다.
그런데도 국내 기업들은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더 우선해야 한다”고 말하면 반(反)기업 정서 운운하는데, 이는 자신의 권한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망각한 행위입니다. 혹자는 글로벌콤팩트 활동을 두고 좌파적이라고까지 하는데, 미국 기업에 좌파가 어디 있습니까? 글로벌 스탠더드일 뿐입니다.
문국현 = 글로벌콤팩트는 기회입니다. 이를 통해 한국의 신용도와 국가경쟁력이 높게 평가되면 외국인투자가 활성화되고, 일자리 만들 기회도 많아질 겁니다. 대규모 직접투자가 밀려오면 주가 3,000시대가 열리고 국제경쟁력도 5~7위까지 올라갈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SK를 비롯해 지배구조가 우수한 상장사들이 글로벌콤팩트에 많이 참여한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만약 상장사의 절반 이상이 참여한다면, 한국사회도 크게 달라질 거라 확신합니다.
남승우 = 조 교수님이 말씀하신대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의 탄생부터 유래하는 겁니다. 사회가 성숙할수록 소비자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당연시하게 됩니다. 즉,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기업은 이윤도 얻지 못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지요.
정리 =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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