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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시 10대 시인] <1> 김소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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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시 10대 시인] <1> 김소월

입력
2007.10.1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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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주 5회(월~금)씩 2주에 걸쳐 한국 현대시 100년을 빛낸 10대 시인의 대표시를 소개합니다. 선정에 참여한 문학평론가 10명이 해설을 맡았습니다. 시 전문은 해당 시인의 정본(正本) 혹은 그에 준하는 작품집에 수록된 내용을 따르고 그 출처를 밝힙니다. <편집자 주>

■ 평론가 10명의 '10대 시인' 선정과정

지난달 18일 저녁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는 국문과 교수들이 속속 모였다. 한국시인협회(이하 시협)가 한국 현대시 100년을 대표하는 작고 시인 10명을 선정하고자 위촉한 40대 초반~50대 초반의 평론가들이었다.

박주택 시협 사무총장은 “문학 외적 고려가 개입할 소지가 있는 생존 작가는 대상에서 제외했고, 문단에서 가장 활발한 현장비평 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견급 평론가들에게 선정 작업을 맡겼다”고 설명했다. 선정위원들은 각자 심사숙고해 작성한 대표 시인 10명 및 작가별 대표시 목록을 제출했다. 즉석에서 집계가 이뤄졌다.

김소월, 한용운, 서정주는 만장일치로 선택됐다. 특히 김소월, 한용운은 선정위원 10명 중 9명이 명단의 가장 앞머리에 나란히 적은 시인이었다. 기재 순서는 순위와 무관했으니 ‘한국 대표 시인’을 묻는 물음에 즉각 떠오른 작가가 소월과 만해였던 셈이다.

소월의 대표작으론 6표를 얻은 <진달래꽃>이 뽑혔고, <산유화>가 3표로 그 뒤를 이었다. 만해의 경우는 <님의 침묵>(9표)이 압도적이었다. 미당은 무려 7편이 대표시 물망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에 대해 이광호 교수는 “미당은 소월, 만해에 비해 창작 시기가 길었고 시적 세계가 극적으로 변모했기 때문에 개인별로 선호하는 작품이 다양하다”고 분석했다.

위원들은 각각 2명의 지지를 얻은 <자화상> <국화 옆에서> <동천>을 놓고 재투표를 실시, <동천>을 미당 대표시로 최종 선정했다.

그 다음은 정지용이었다. 이재복 교수는 “지용은 동시대의 김소월, 김영랑 류의 서정시와 달리, 모던한 시적 정서와 언어를 천착한 최초의 시인”이라고 촌평했다. 지용을 지목한 9명 중 5명이 꼽은 <유리창>이 그의 대표시로 정해졌다.

“평안도 산골 마을의 토속적 정취를 감칠맛 나는 방언으로 표현”(이숭원)한 백석과 “시의 예술성과 사회성을 변증법적으로 종합하려 한”(오형엽) 김수영은 나란히 8표를 얻었다. 두 시인의 대표작은 큰 이견 없이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과 <풀>로 낙찰됐다.

이상과 김춘수는 각각 7명의 지지를 얻었다. 이상은 “한국 시단에서 현대의 의미를 가장 빨리,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추구”(정과리)했다는 점, 김춘수는 “시를 철학적 사유의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문혜원)는 점에서 시사(詩史)의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촌평이 따랐다.

이상의 작품 중에선 <오감도 1호>가 <절벽> <거울>과 경합해 ‘제1의 아해’가 됐고, 김춘수의 경우 <꽃을 위한 서시>가 무난히 대표시로 꼽혔다. “시가 가질 수 있는 정직한 자기 고백의 최대치를 보여주는”(유성호) 윤동주는 6표를 얻었다. 위원들은 논의 끝에 <서시> <별헤는 밤> <간> 대신 <또다른 고향>을 시인의 대표작으로 올렸다.

문제는 10번째 시인이었다. 박목월과 김종삼이 나란히 5표를 얻은 것. “현실의 모순과 비극성을 유토피아적 세계에 대한 갈망으로 초극하고자 한” 박목월과 “세계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절제된 언어미학으로 표현한” 김종삼 사이에서 위원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어느 한 쪽만 취할 수 없으니 대표 시인의 수를 11명으로 늘리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결국 두 시인만 놓고 재투표가 실시됐고, 결과는 박목월이었다. 그의 대표시로는 <나그네>가 선정됐다. 이렇게 엄선된 10명의 시인은 1876년생인 한용운을 제외하면 모두 1902년(김소월, 정지용)과 1922년(김춘수) 사이에 태어났다.

30년을 한 세대로 보는 통상적 기준을 따른다면 10대 시인 대부분이 동세대 문인이었던 셈이다. 이 중 이상, 윤동주는 20대 후반, 김소월은 33세의 나이로 요절한 반면에 서정주, 김춘수는 팔순을 넘기며 장수했다.

선정위원들은 “10대 시인이란 비좁은 자리엔 서지 못했지만 100년 시사를 빛낸 작가들은 너무나 많다”고 입을 모았다. 김종삼은 말할 것도 없고, 이상화 김영랑 이육사 김현승 이용악 조지훈 신동엽 박재삼 기형도 등 이날 입에 오르내린 시인들은 이 중 누구를 최종 명단에 올리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시적 성취를 보여줬다는 평이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시 전문

진달래꽃

- 김소월 -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히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출처 : 권영빈 엮음, <김소월시전집>, 문학사상사, 2007

◆김소월 약력

△1902년 평북 구성 출생. 본명 정식(廷湜) △1915년 오산학교 입학. 이곳에서 시 스승인 김억(金億)을 만남 △배재고보 졸업, 도쿄상대 중퇴 △1920년 <창조>에 ‘낭인의 봄’ 등 발표하며 데뷔 △1922년 <학생계>에 ‘진달래꽃’ 발표 △1924년 <영대>에 ‘산유화’ 발표 △1925년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 발간 △1934년 12월 음독 자살할 때까지 154편의 시를 남김

◆'진달래 꽃' 작품해설이별에 대처하는 한국인 특유의 반어법"가지 마세요" 눈물보다 서러운 축복 "잘 가세요"

■ 진달래 꽃 작품해설

1922년 <개벽>에 발표된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남녀 간의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낡은 시가 아니다. 이 시는 1920년대라는 시대적 단위를 넘어서서 사랑의 보편성을 노래한 20세기 한국의 명시라 평가해도 무리가 아니다.

이 시에서 주목되는 것은 우선 형식과 언어이다. 알려진 것처럼 7ㆍ5조 또는 3ㆍ4ㆍ·5음절의 3음보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이 시는 매연 3행 모두 12연의 기ㆍ승ㆍ전ㆍ결의 구조적 완결성을 지니고 있다. 미적 형식으로서 견고한 완결성이 이 시에 풍요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일상적 어휘들 또한 시적인 완결성을 위해 긴밀하게 변주되어 하나의 명편이 탄생된 것이다.

다음으로 논할 수 있는 것은 여성적인 화자의 목소리가 전해 주는 절절한 호소력이다. 여성적인 화자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고 해서 이 시의 화자가 여성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매 연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곡진한 종결 어미들은 모두 이별의 정서를 절실하게 전하는데 있어서 유감이 없다. 남성도 사랑하던 사람과 이별하는 순간에는 이처럼 여성적인 어조로 말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의 화자는 지금 이 순간의 이별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일단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가실 때’라고 분명히 화자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가 역겨워서 ‘가실 때’는 님이 가시는 미래의 그 어느 때이다. 언젠가 닥쳐올지 모를 이별의 슬픔을 예견하면서 사랑의 기쁨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 이 시의 묘미이다. 사랑의 기쁨을 직접적인 언사로 말하지 않는 것이 한국인들이 우회적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방식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시의 화자가 이별의 그 순간 눈물을 흘리느냐 흘리지 않느냐의 문제이다. 이 시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로 끝나고 있다. 이별을 부정하는 ‘아니 눈물’을 흘린다고 했으니 그것은 이별의 눈물은 흘리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해석된다. 부정의 눈물이 통곡의 눈물보다 더 깊은 호소력을 갖는다는 것을 김소월은 깨달았던 것이다. 김소월을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 시인으로 만든 작시법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최동호(문학평론가ㆍ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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