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톈안먼(天安門) 유혈 사태를 소재로 한 중국 대표적 전위파 화가 웨민쥔(岳敏君ㆍ45)의 그림 <처형> 이 중국 현대미술 사상최고인 590만 달러(약 55억원)에 팔렸다. 처형>
중국 화단의 '4대 천왕'으로 불리는 웨민쥔은 흰 치아를 보이며 웃는 인물의 얼굴을 묘사한 독특한 화풍의 작품들로 유명하다. <처형> 은 톈안먼처럼 보이는 붉은 벽 앞에서 속옷 차림의 남자들이 총을 겨누는 자세를 취한 사람들과 대치하는 구도로 돼있다. 처형>
14일 CNN과 AP통신 인터넷판 등에 따르면 <처형> 은 12일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전화로 590만 달러를 부른 구매자에게 낙찰됐다. 낙찰가는 당초 예정가인 410만 달러를 훨씬 상회하는 것이다. 웨민쥔은 이로써 6월 경매시장에서 자신의 또 다른 그림 <교황> 이 세운 중국 현대미술 작품 최고가(437만 달러)기록을 4개월 만에 경신했다. 교황> 처형>
95년 작품인 <처형> 은 완성된 지 얼마 안돼 홍콩의 미술품 중개인 맨프레드 쇼니가 약 5,000달러에 사들였으며 그는 다시 영국인 은행원에 3만2,000달러에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처형>
전 소장자는 "홍콩의 화랑을 찾았다가 <처형> 을 본 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며 "당시 거금을 들여 친구였던 쇼니에게서 구입했다"고 회고했다. 처형>
이 작품은 스페인의 거장 프란시스코 데 고야가 19세기 초 마드리드 학살을 화폭에 담은 <1808년 5월3일>과 프랑스 인상파 대가 에두와르 마네작 <멕시코 맥시밀리언 황제의 처형> 을 연상시키는데, 웨민쥔은 정치적인 파문을 의식, 톈안먼 사건과 결부시키지 말 것을 애써 당부하고 있다. 멕시코>
웨민쥔은 자신의 그림이 소더비에서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팔려나간 뒤 베이징의 자택에서 가진 인터뷰를 통해 "텐안먼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꼭 어떤 사건과 장소를 특정해 그린 것은 절대로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배경에 있는 붉은 담장은 우리 중국 화가들에겐 아주 친숙한 이미지에 지나지 않다"며 정치적인 해석을 하지 말라면서도 "지상의 모든 인류 갈등이 웃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지적, 여운을 남겼다.
웨민쥔은 "<처형> 의 아이디어를 처음 얻은 뒤 그림으로 옮기는 데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한 달 만에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처형>
동북 헤이룽장(黑龍江)성 출신인 그는 78년 개혁개방 후 미술 서적을 통해 다른 화가를 사숙했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에는 생활을 위해 석유 시추 현장에서 수년간 일하기도 했다.
85년 허베이 사범대학 미술과에 진학해서야 본격적인 미술 수업을 시작했고 대학 졸업 후 1년간 교사로 지내다가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업 화가로 나섰다.
웨민쥔은 베이징의 고궁 위안밍위안(圓明園) 부근에서 다른 전위파 화가들과 어울리면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펼쳤다. 그러다가 93년 그의 유별난 화풍이 비평가와 언론 등의 주목을 끌면서 쟝샤오강(張曉剛), 팡리쥔(方力鈞), 왕광이(王廣義)와 함께 '중국 화단의 F4'로서 각광을 받게 됐다.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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