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건, 뭐어…지?”
시사회에서 <바르게살자> 를 보다가, 뚱딴지처럼 영화에 나오지도 않는 배우 오광록이 떠올랐다. 이 영화는 마치 오광록의 4차원 말투를 영상으로 풀어 낸 것 같다. 손짓이 말보다 0.5초 빨리 나오는, 음절과 음절 사이가 반박자씩 뜨는 괴상야릇한 엇박자. 바르게살자>
충무로의 소문난 찰떡궁합 장진 감독과 정재영. 영화는 이 콤비의 귀환이라는 점에서 반쯤 기대를, 또 반쯤 선입견을 갖고 극장에 들어서게 만든다. 메가폰은 신인 라희찬 감독이 잡았지만, 장진 감독이 시나리오와 제작을 맡은 ‘장진표’ 코미디다. 뭔가 잔뜩 심각한 게 나올 듯 하다가, 헛방귀 새듯 푸시시 김을 빼는 엉뚱한 유머.
영화는 빨던 사탕을 뺏긴 사내아이 표정의 교통순경 정도만(정재영)이 불법 좌회전을 하는 승용차를 붙잡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바쁘다”고 대충 둘러대는 운전자는 알고 보니 신임 경찰서장. 그러나 ‘유드리(융통성) 제로’의 바른생활 사나이 정도만은 주저함 없이 딱지를 끊는다.
다소 심심하게 흘러가는 영화는 고속승진을 꿈꾸는 신임 서장 의욕이 구체화되면서 스피드가 붙는다. 상부와 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서장이 생각해 낸 것은 은행강도 진압 모의훈련. 서장은 리얼하게 은행강도 역을 해낼 부하로 망설임 없이 정도만을 선택한다. 그리고 내리는 지령, “최선을 다해 은행을 털어라. 잡는 건 우리가 알아서 할게.”
상관의 명령을 받은 정도만은 ‘리얼하게’가 아니라 ‘리얼리(Really)’ 은행을 턴다. 비록 가짜 총에 ‘포박’ ‘사망’이라는 딱지를 인질의 목에 거는 은행강도지만, 경찰특공대까지 무력하게 만드는 그의 인질극은 결코 ‘쇼’가 아니다.
설상가상 방송사가 이 인질극을 전국으로 생방송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불안감을 느낀 서장은 “수고했다. 대충 끝내자”고 소리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저…지금은 제가 강도니까, 결정은 제가 할건데요.”다.
이 영화의 재미는 단순히 모의훈련이 실제 상황이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대충 시간을 때우려던 경찰과 은행직원들이 점점 진짜 인질극 상황 속으로 빨려드는 묘한 긴장감, 전위적인 부조리극을 연상케 하는 인물들의 대사와 표정, 리얼리티와 사이키델릭 사이에서 널뛰기하는 연출자의 재간이 이 영화의 진짜 맛이다. 거기에 공무원들의 복지부동과 한건주의, 센세이션을 좇는 언론의 모습이 양념으로 더해진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꼭 잘 만들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정형성보다 장르의 틀을 깨는 괴상함이 내러티브의 매력이지만, 좀 더 세게 나갔으면 하는 부분에서 영화는 힘을 잃고 같은 자리를 맴돈다.
정재영도 엉뚱하면서 웅숭깊은 캐릭터에 적절한 표정을 연구하느라 애쓴 흔적이 역력하지만, 앞뒤를 잘라먹은 듯 변화의 폭이 너무 좁다. 비유하자면, 오광록의 말투는 있으나, 오광록이 풍기는 기묘한 분위기는 생략된 느낌이다(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에 오광록은 안 나온다). 18일 개봉. 15세 관람가.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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