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웅산 수치 지음ㆍ이문희 옮김 / 공존 발행ㆍ331쪽ㆍ1만2,000원
광주민주화항쟁 당시가 그러했을까. 군사정권의 폭정으로 일어난 민중의 항거에 총이 나섰다. 지난달 군부의 느닷없는 기름값 인상에 반대하며 궐기했던 ‘피의 항쟁’이다.
그 저변에는 아시아 부국에서 최빈국으로 전락시킨 탐욕스런 군부의 실정에 대한 해묵은 울분이 깔려 있었다. 버마(미얀마)와 1980년의 광주는 배 다른 형제다.
사람들의 민주화 열망은 한 사람에 모아졌다. 두 사람은 너무도 닮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아웅산 수치 여사. 모두 노벨 평화상 수상자라는 점은 그들의 위상을 한 마디로 웅변한다. 일거수일투족이 세계의 관심이다.
그러나 그들을 둘러싼 현실은 정반대. 광주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지펴 올렸던 김대중씨는 훗날 대통령이 됐지만, 버마 민주화 운동의 불꽃 아웅산 수치 여사는 정권을 장악한 군부에 의해 12년째 가택 연금돼 있는 상태다. 1991년 노벨상도 아들이 대신 수상해야 했고, 계속되는 국제사회의 압력 끝에 4년 뒤 풀려났다.
99년 영국에 있는 남편의 사망 통보를 받고도, 출국을 포기해야 했던 일은 그가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다시 귀국하려 할 경우, 군부의 저지로 아예 입국하지 못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후 UN 특사와 군부 등에 의해 해제와 연금을 반복하다, 지난 5월로 군부가 약속한 연금해제가 1년 연기돼 있는 상태다.
그녀가 걸어 온 뜨거운 인생 여정이 52편의 글로 묶여져 나왔다.
첫 번째 가택 연금에서 해제된 95년 11월부터 한 달 동안 일본 마이니치 신문에서 팩스를 통해 <버마에서 온 편지> 라는 제목으로 연재됐던 글이다. 급박한 현실에 쫓겨 있던 저자가 과거를 돌이키는 수필류의 글을 쓰기는 이번이 처음. 특히 한국판에는 당시 긴박한 상황이나 정치 현실 때문에 실리지 못한 글도 합쳐져 의의를 더한다. 버마에서>
다른 마을에 놀러 갈 때도 신고를 해야 하는 현실, 뇌물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회 풍경 등 상상을 비웃는 풍경이 1부를 차지한다. 2부 ‘깊은 어둠 속의 작은 평화’는 버마인들의 작지만 아름다운 일상을 그린다.
130여개 민족에 100여개의 언어가 공존하는 버마를 하나로 묶어주는 돈독한 신앙 생활이 군부의 학정과 얽혀있다. 3부는 처절한 민주화 항쟁을 함께 한 동지 이야기, 집필 중 군부와 벌여야 했던 긴박한 대치 상황이 그의 육성을 타고 흘러 나온다.
버마의 쇄국조치는 상상을 비웃는다. 인터넷 등 외부와의 교신은 모두 국가에 등록ㆍ관리될 뿐 아니라, 팩스는 무단으로 군부가 검열ㆍ감청하는 실정이다. 외부의 소식을 접할 길이라고는 라디오가 고작이다. 연재 당시 군부에 신고하지 않은 글을 팩스로 부치려던 사람은 군부에 잡혔다가, 교도소에서 숨을 거두는 일까지 벌어졌다.
버마의 현재 국호인 미얀마는 군사 정부의 작품이다. 1989년 수치 여사를 집에 묶어둔 군사정부가 국민의 동의 없이 국호를 바꾸면서, 수도 이름도 랑군에서 양곤으로 교체한 것.
그러나 국민의 대부분은 미얀마보다 버마라고 부르며, 나라 바깥에서도 그렇게 불러 주기를 바란다고 머리말을 쓴 버마 민족민주 동맹 한국 지부장 아웅 민 수이씨는 전했다.
그녀는 현재 유일하게 갇혀있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다. 아웅 민 수이씨는 “2008년 5월로 예정된 가택연금 해제 이후라도 수치여사가 책의 한국어판 서문을 쓸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2004년 5ㆍ18 기념 재단이 시상하는 ‘제5회 광주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참석할 수 없었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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