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 깊어 가는 관악산 자락에 50여명의 철학도가 모였다.
11일 오후 5시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2층 마로니에홀 ‘박홍규 전집 전 5권 출판 기념회’. 1995년 첫 권이 나온 후, 간헐적으로 묶여 나온 스승의 강의집이 최근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 강의> 로 대미를 장식한 것(민음사). 철학 강의 녹취록은 국내 처음이다. 베르그송의>
독일ㆍ미국 철학이 득세하던 1970~80년대, 희랍 철학과 프랑스철학 강독으로 사유의 신지평을 펼쳐 보인 고 박 교수는 제자들의 힘으로 환생했다. 제법 세월의 더께가 앉은 제자들은 전라도 사투리가 심했던 박 교수의 강의를 글로 다듬던 일, 쌍과부 집이나 한잔집까지 이어지던 열띤 토론 등에 대해 회고하면서 추억에 잠겼다.
변산공동체 대표 윤구병씨는 “대학생들에게 플라톤 원어 독해를 강요했던 선생님은 참 불친절했다”고 돌이켰다. 동의의 웃음이 감돌았다. 윤씨는 “선생님이 우리를 혹독하게 괴롭히며 가르치신 것은 생명체 간의 관계망이었다”고 말했다.
박 교수의 강의에 열심으로 참석했던 우은주(53)씨도 왔다. 유럽에서의 철학 공부를 끝내고, 한국서의 본격 활동을 가늠중인 그는 “이제 철학은 분석과 과학이 아닌, 생명 철학이 돼야 한다”며 “박 선생님은 일찍이 베르그송 강독을 통해 타성을 뚫고 나가는 생명의 힘을 알게 하셨다”고 돌이켰다.
11월 24일 프랑스 에콜 노르말에서 열리는 ‘베르그송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박 교수의 제자 최화 교수는 박 교수의 철학에 대해 발표한다. 내년 고인의 기일인 3월 9일에는 기념 학술 대회가 열린다. 이정호 방송통신대 교수는 “희랍 철학 원전을 통해 인문학의 인프라를 다진 분”이라고 말했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