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구속됐다. 유능한 경제관료로 촉망을 받으며, 특히 참여정부 들어서는 기획예산처 장관과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성공가도를 질주했던 그의 몰락은 허망하기 그지없다. 헝클어진 차림새에 지치디 지친 표정으로 구치소로 향하는 그의 모습은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다.
신정아씨가 동국대 교수에 임용되도록 학교측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2개 사찰에 특별교부금 12억원이 편법지원 되도록 권한을 남용한 혐의, 기업들에게 성곡미술관에 후원금을 내도록 요구한 혐의가 적용됐다.
하나같이 자신이 아니라, 신씨를 무리하게 돕는 과정에서 생겨난 일이다. 그래서 그를 지탄하기보다는 동정하는 시각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기업ㆍ학교에까지 미치는 관료의 힘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두 사람 관계가 어떻든 간에 사건의 본질은 사적인 이익을 위해 공적 지위를 남용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말 한 마디에 이름도 없는 개인사찰에 10억원의 국고가 지원되고, 대기업들이 미술관과 전시회에 적지 않은 금액을 후원했다.
우리 사회에서 고위 관료가 갖는 막강한 파워의 실상이 그대로 드러났다. 자의적인 예산 배정은 물론, 민간 기업에도 바로 말발이 먹히고 심지어 대학 교수 임용까지 좌지우지할 힘이 있다는 증거들이다.
● 기업·학교에서까지 미치는 관료의 힘
관료의 힘은 어디서 나오나. 규제와 감독이다. 민간 기업들이 공무원들 앞에서 무조건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보통신부의 정책 하나에 따라 3대 이동통신업체의 순위가 바뀔 수 있고, 기업 실적이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 당연히 공무원들은 규제와 감독을 풀기보다 강화하는 쪽에 인센티브가 있다.
감사원 조사 결과 최근 3년간 신설되거나 강화된 규제는 1,102건이지만, 폐지·완화된 규제는 486건에 불과했다. 이는 자신들의 미래가 걸린 일이기도 하다. 현직 부서의 힘이 강해야만 퇴직하더라도 갈 자리가 많아진다.
'경제검찰'로 통하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2005년 이후 퇴직한 4급 이상 고위직 22명 가운데 절반인 11명이 로펌으로 갔다. 그들의 역할이 무엇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참여연대는 최근 퇴직한 공직자 1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65%인 73명이 자신이 근무했던 부처와 연관된 기업이나 협회에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관료의 권한이 과도해지면 필연적으로 부정 부패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최근 발표한 '2007년 부패인식지수(CPI)'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180개국 중 43위로 평가됐다.
세계 11~12위까지 올라간 경제 규모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낯 뜨거운 수치다.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부패로 인한 경제 손실은 국내총생산(GDP)의 0.7∼1.4%로 추산된다. 이런 수식을 대지 않더라도 자본주의는 자유롭고, 투명하며, 공정한 경제 질서 위에서 꽃을 피운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한다.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를 거쳐 이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선진국으로의 도약이다. 부패한 국가가 선진국이 된 사례는 없다. 과거에는 경제발전의 원동력을 인적, 물적 자본에서 찾았으나, 요즘엔 투명성, 신뢰 같은 사회적 자본이 더욱 중요시된다.
깨끗하면서도 투명한 국가질서를 만드는 과업은 경제 살리기 못지않게 중요한 시대의 소명이다. 대권을 향해 뛰고 있는 정치인들 가운데 이러한 시대정신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걱정스럽다.
● 깨끗하고 투명한 사회는 시대정신
한국 사회의 부패가 공직사회에 모든 책임이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기업의 행태는 더 심하고, 교육, 법조, 언론 등 힘 있는 기관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풍토를 바로잡는 책임은 정부에 있고, 수단도 정부에 있다.
그 출발은 시장과 민간에 대한 과대한 정부 개입을 과감하게 축소하는 일이다. 규제가 줄면 부패도 준다. 물론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건전한 이해관계의 조정자, 경제질서의 감독자로서 권한이 약화되어서는 안 된다. 깨끗하면서도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질서를 만드는 일은 경제 살리기보다 풀기 어려운 고차원의 방정식이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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