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위원회가 지구본을 근심스럽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헌신적 봉사활동이나 국제 분쟁지역에서 화해를 이끌어낸 인물에 주목했던 것과는 달리 최근 들어 빈곤, 기후변화와 같은 전지구적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2004년 케냐 환경운동가 왕가리 마타이가 수상자로 선정된 데 이어 지난해 빈곤 해결을 위해 새로운 금융 기법 ‘마이크로 크레딧’을 개발한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와 그가 세운 그라민은행이 평화상을 받았다.
기후변화 문제가 전세계적 이슈로 부상한 올해는 일찌감치 노벨평화상이 기후변화 운동가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고, 결국 앨 고어(59) 전 미국 부통령과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가 수상자로 선정됐다.
노벨위원회는 기후변화가 인간의 활동에 의한 것이며 앞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임을 강조했다. 위원회는 “1980년대 지구 온난화는 단순히 흥미 있는 가설이었으나 90년대에는 IPCC의 활동 등에 힘입어 더 확실한 증거를 얻었고, 최근 수년 동안 온난화가 인간의 활동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더욱 확실해졌다”고 밝혔다.
결국 기후변화 관련 환경운동가에게 평화상을 수여함으로써 세계 각국이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등의 노력에 적극 나서기를 촉구한 셈이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들이 기후변화 대처에 소극적인 상황에서 교토의정서 시한이 2012년으로 만료됨에 따라 세계 각국이 새로운 온실가스 배출규제에 대해 긴급한 합의를 이루어 내야 할 시점이라는 사실도 수상자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 문제는 앨 고어와 IPCC의 노력에 힘입어 전세계적 관심사로 부각됐다. 2000년 대선 패배 후 환경운동에 뛰어든 고어는 특히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 을 직접 제작하고 오스카상까지 수상하면서 환경운동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불편한>
이후 고어는 세계 최대의 콘서트로 기록된 환경 콘서트 ‘라이브 어스’를 기획해 다시 한번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올해 7월 7일 5대륙 7개국에서 24시간 동안 열린 이 콘서트에는 고어와 절친한 친구인 록스타 존 본 조비를 비롯해 레드 핫 칠리 페퍼스, U2의 보노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출연해 전세계 젊은이들에게 환경 문제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고어는 노벨상 수상이 결정되자 “커다란 영광”이라면서 “기후변화는 정치적 이슈가 아니라 전세계가 긴급히 해결해야 할 당면 위기”라고 강조했다. 상금은 환경운동 단체에 기부할 뜻을 밝혔다.
IPCC는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공동으로 인간의 활동이 기후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 88년 11월 설립한 조직이다. 의장 및 사무국장, 3개의 실무그룹으로 구성돼 있으며, 1990년 이후 지금까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기후변화와 인간 활동의 상관성을 보고했다.
올해 초 발간된 보고서는 “기후변화 원인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활동에 의한 것”이라면서 4월에는 “2080년까지 평균기온이 3도 이상 오르면 지구상 대부분의 생물이 멸종하며 35억명이 물부족에 시달린다”고 발표, 세계인들의 경각심을 크게 높였다.
5월에는 온실가스 배출을 각국이 크게 감축함으로써 2100년까지 지구 온도가 평균 2도 상승하는 수준에서 온난화를 막자는 대책을 제시했다. IPCC의 보고서가 발표된 후 영국과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를 전보다 크게 높였다. IPCC는 전세계 학자들이 검토한 최종 보고서를 연말에 확정 발표한다.
라젠드라 파차우리 IPCC 의장은 뉴델리의 사무실에서 수상 소식을 접하고 “노벨 평화상 수상이 지구 온난화에 대항해 ‘시급히’ 싸워야 한다는 인식을 높일 것”이라며 “기후변화는 전세계의 안정적인 경제 활동과 사회 안정을 붕괴시킬 수 있는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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