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선옥 방미진 외 지음ㆍ원종찬 엮음 / 창비 발행ㆍ264쪽ㆍ9,000원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은 어린이의 세계와 모든 것이 결정돼버린 어른의 세계. 그 어느 쪽에도 편입되지 못하는 10대들에게 삶이란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것이다.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신기루 같은 일상을 버텨가고 있는 청소년들의 세계를 다룬 단편소설집 <라일락 피면> 이 나왔다. 성석제 공선옥 조은이 등 8명의 작가들이 참여했다. 라일락>
최인석은‘쉰 아홉개의 이빨’에서 부당한 권위를 행사하는 어른들의 세계와 불화하는 소년의 심리를 다룬다.
사회주의운동을 했던 노동자 아버지가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자 소년은 권위주의적 목사를 새 아버지로 맞는다. 종교, 진학, 생활태도 하나하나 일일이 간섭하는 의붓아버지. 권위에 도전하는 그에게 새 아버지가 폭력을 행사하자“내 인생을 좌지우지하려 들지말라”고 소리치며 가출을 결심한다. 그러나“이 놈의 세상 살아낸다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야.
세상엔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 천지야. 집을 나가면 여기보다 나을 것 같으냐”라는 의붓형의 반문에 불현듯 인생의 씁쓸한 진실을 체감한다.
조은이의 ‘헤바’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중학생 소년이 학교를 자퇴한 뒤 자유분방한 연애를 즐기는 친척누나를 만나면서 새로운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과정을 그렸다.
유레일 패스로 유럽을 돌아다니며 여덟 국가의 남녀여행객과 한방에서 자며 밤새 연애와 자유를 논하며“연애는 내 발정기. 난 재밌게 사는게 인생목표”라고 당당히 선언하는 누나.
그 삶을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 소년은 ‘뒷머리가 목을 덮는지 안덮는지 따위나 감시하는 학교와 외고에 목숨을 건 학원을 전전하는’ 자신의 삶이 한없이 시시하게 느껴지고 “내일을 위해 나를 포기하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가”라고 외친다.
이밖에 광주민주항쟁을 통해 역사의식에 눈뜨지만 끝내 폭력의 희생양이 된 청춘의 비극을 다룬 공선옥의 ‘라일락피면’, 중학교 교실에서 벌어지는 혈액형 공방을 가벼운 필치로 그려내며 고정관념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방미진의 ‘영희가 O형을 선택한 이유’ 등 역량있는 작가들의 8색(色)‘청춘스케치’ 가 참신하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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