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기 지음ㆍ윤구병 김형윤 설호정 엮음 / 휴머니스트 발행ㆍ351, 400, 410쪽ㆍ각권 1만6,000원
1970, 80년대 전통과 현대에 대한 깊고 세련된 통찰을 선보였던 한글전용 교양잡지 <뿌리 깊은 나무> 와 <샘이 깊은 물> 의 발행인 한창기(1936~1997). 샘이> 뿌리>
고인의 10주기를 맞아 이 잡지들의 편집인, 주간으로 인연을 맺었던 윤구병, 김형윤, 설호정씨가 그의 글을 세 권의 책에 모았다. 책은 1970년에서 97년까지 27년 간 고인이 남긴 에세이들로 전통, 민속과 문화, 문화시평, 언어 등 소재와 성격에 따라 나뉘어져 있다.
엮은이들의 말대로 그의 글에는 “사람들이 모른다고 해서 당장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들, 그러나 만약에 알게되면 사람들의 머릿속에 작은 불씨를 일으킬” 화제들이 가득하다.
사이시옷, 변소, 모시, 경상도사투리, 간판…. 무심코 지나가기 쉬운 작고 하찮은 소재들처럼 보이지만 명민한 문화관찰자였던 지은이의 눈길을 머물면 그것들은 문화적 의미를 획득한다.
쓰여진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지은이의 부지런한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살아 숨쉬는 다양한 한창기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
가령 결과를 의미하는 ‘때문’ 과 원인과 이유를 의미하는 ‘까닭’ 을 혼동해서 쓰지 말자는 글(‘‘때문’과 까닭’’)에서는 한국어를 섬세하게 통찰하는 국어학자의 모습이 보이고, 교복자율화에 대한 기성세대의 반대여론에 대해 ‘열세 살부터 열 여덟 살까지의 아이들에게 겉만 엇비슷한 제복이 탈을 씌워 평등의 시늉을 시키는 것이야말로 제도적인 위선’ 이라고 질타하는 글(‘이 자유국가의 낡은 풍물’)에서는 자유주의적 문화비평가의 얼굴이 보인다.
또한 ‘아내를 집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을 평균 한국남자의 말 버릇이라 용서해 준다손 치더라도, 한국의 조용한 아내와 어머니로 있게 하겠다는 말은 따져보아야 마땅하다’ 는 주장이 담긴 글(‘대통령의 아내’)에서는 진보적 남녀 평등론자로서의 그의 생각을 확인할 수도 있다.
묵은 장맛처럼 맛깔스러운 토박이말을 즐겨 사용하면서도 발랄하고 현대적인 사유를 담고있는 그의 글들을 음미하다 보면 일찍 떠난 그에 대한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을 것이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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