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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나무' 나무의 입을 빌려 삶을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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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나무' 나무의 입을 빌려 삶을 이야기하다

입력
2007.10.1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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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원 지음 / 뿔 발행ㆍ188쪽ㆍ9,000원

소설가 이순원(50)씨가 장편 <유리의 노래> 를 낸 지 2년 만에 부려놓은 작품은 우화 소설이다.

궁핍한 겨울에 아껴둔 밤을 땅에 심어 부유해진 농가 마당엔 밤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해마다 밤송이를 주렁주렁 맺는 아름드리 나무가 할아버지, 작년에야 처음으로 꽃이란 걸 피워본 작은 나무가 손자다.

두 조손(祖孫) 나무가 함박눈 내리는 겨울을 거쳐 한 해의 결실을 맺고 다시 ‘겨울잠’에 들 때까지 둘이서 나누는 대화가 소설의 큰 줄기를 이룬다.

우화인 만큼 세상살이에 있어 따를 만한, 따르진 않더라도 곱씹어볼 만한 교훈들이 곳곳에 비유적으로 표현돼 있다.

처음 맺은 밤송이가 맥없이 떨어진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하는 손자에게 할아버지는 “첫해의 꽃으로 열매를 맺는 나무는 없다. 그건 나무가 아니라 한 해를 살다 가는 풀들의 세상에서나 있는 일”(14쪽)이라고 위로한다.

바람, 구름처럼 움직이고 싶다는 손자의 투정엔 “사람이 뿌려주는 몇 방울의 물로 목숨을 연명하는… 그런 나무처럼 화분에 담겨 세상을 떠돌아다니고 싶으냐”(82쪽)며 단단한 뿌리내리기에 전념하라는 할아버지의 주문이 뒤따른다.

작가는 세심한 자연관찰을 통해 밋밋하고 상투적인 비유 수준을 훌쩍 넘어선다.

꽃샘추위에 지고 말 텐데도 기어이 꽃을 피우는 매화는 난관에 굴하지 않는 당당함을 표상한다. 늦게 개화하는 대추나무는 손자의 눈엔 ‘게으름뱅이 나무’지만, 할아버지는 거기서 “다른 나무들 모두… 봄맞이를 하면 덩달아 마음이 조급해질 텐데, 꾹 참고 자기 시간을 기다리는”(99쪽) 인내심을 읽어낸다.

작고 볼품없는 생김새를 비웃는 손자 나무에게 의젓하게 대꾸하며 짧은 생각을 깨우치는 냉이꽃의 모습에서도 자연의 제각기 의미를 포착해내는 작가의 안목을 엿보게 된다.

우화라고 해도 훈계조로 일관하면 지루할 터. 둘째 가라면 서러운 우리 시대 이야기꾼은 제자리에 발붙이고 선 두 나무 만으로도 읽는이의 감성을 쥐락펴락하는 서사를 만들어 낸다.

생애 마지막 겨울잠을 예감한 할아버지 나무가 주변의 나무 친구들 이름을 차례차례 부르고 마지막으로 제 이름을 불러보는 마지막 장면엔 오래도록 가슴이 먹먹하다.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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