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회를 맞은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영국의 여성작가 도리스 레싱(88)이었다. 레싱은 1990년대 이후 줄곧 수상 후보로 거명됐지만 올해 레싱의 수상을 점친 이는 많지 않았다.
영국의 베팅사이트 래드브록스(ladbrokes.com)에선 그에게 돈을 거는 사람이 없었고, 스웨덴 최대 일간지인 다겐스 뉘히에테르 10일자에 실린 10대 유력 후보 명단에도 레싱의 이름은 없었다.
하지만 레싱은 현대 영국 문학의 가장 중심에 있는 작가다.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영문학)는 “레싱은 소수민족,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 관심이 많은 영국의 대표적 페미니즘 작가”라고 말했다.
이런 주제를 다루는 레싱의 작품세계는 폭넓고 다양하다. 1950년 장편소설 <풀잎은 노래한다> (The Grass is Singing)로 데뷔한 후 60여년 가까운 창작활동을 통해 레싱은 사실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우화, SF 등 다양한 서술기법을 선보였다. 소설뿐 아니라 시, 희곡, 만화에 이르기까지 장르에 구애됨도 없었다. 풀잎은>
남부 아프리카 농장을 배경으로 흑인 노예에게 매혹된 백인 농부 아내의 이야기를 다룬 <풀잎은 노래한다> 는 시적인 언어가 넘실대는 소설로, 작가가 짐바브웨 백인 빈농의 딸로 성장한 경험에서 일찍부터 품게 된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62년작 <황금 노트북> (The Golden Notebook)까지 리얼리즘 경향을 견지할 동안 레싱은 50년대 ‘성난 젊은이들(Angry Young Men)’ 세대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황금> 풀잎은>
62년 퍼낸 '황금 노트북' 페미니즘의 고전 평가받아
움베르토 에코 "노벨상 거머쥘만한 충문한 자격있다"
52년부터 69년까지 집필한 ‘마사 퀘스트 5부작’으로 불리는 <폭력의 아이들> (The Children of Violence)은 성장소설 계열의 작품으로, 사회적 환경과 지도자의 품성 간의 관계를 예리하게 묘파한 수작이다. 이 연작의 마지막 편인 <사대문의 도시> (The Four-Gated City)에서 엿보인 ‘세계 멸망과 새로운 질서의 태동’이란 주제는 레싱이 60년대의 리얼리즘 경향에서 벗어나 70, 80년대 본격적으로 시도한 판타지 및 SF 장르에서 형상화된다. 사대문의> 폭력의>
74년작 <어느 생존자의 비망록> (The Memoirs of a Survivor)은 작품 속 화자가 폐소공포증을 겪는 한 소녀의 성장기가 담긴 여러 개의 방(房)을 탐방한다는 초현실적 설정을 통해 가족과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억압을 그린, 페미니즘 소설의 전범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레싱은 88년에 쓴 <다섯째 아이> (The Fifth Child)에서는 동화와 신화, 그로테스크 기법을 혼합, 비정상적으로 태어난 다섯번째 아이로 인해 동요하는 가정의 모습을 통해 ‘전통적 가족’이란 가치관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다섯째> 어느>
84년작인 <제인 좀머의 일기> (The Diaries of Jane Somers)를 통해 리얼리즘 작풍으로 복귀하면서 레싱은 중년 여성이 겪는 사회적 관계라는 새로운 주제를 천착한다. <다시, 사랑> (Love, Againㆍ1996)도 그 연속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다시,> 제인>
레싱은 영국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전통의 기반 위에서 톨스토이, 스탕달 등 유럽의 고전적 리얼리즘을 받아들여 독특한 입지를 구축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여기에 표현 기법과 장르의 장벽을 뛰어넘은 열정적 실험정신은 그를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작가로 규정하는데 부족함이 없게 만드는 요소다.
<장미의 이름> 의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는 이날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참석했다가 수상자 발표 후 AFP와의 회견에서 “레싱은 노벨문학상을 거머쥘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며 “비록 그녀만큼은 기쁘지 않겠지만 나도 기쁘다”고 말했다. 장미의>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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