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영국의 ‘성난 젊은이들(Angry Youngmen)’을 대표하는 소설가인 도리스 레싱은 1919년 이란 케르만샤에서 은행원이었던 영국인 아버지와 간호사 출신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도리스 메이 테일러.
보다 나은 삶을 위해 1925년 영국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의 짐바브웨로 이주한 레싱의 가족은 옥수수 농장 경영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불우한 시절을 보냈다. 특히 엄격한 어머니로 인해 고통을 겪은 레싱은 가톨릭 여학교에서 끔찍한 학창시절을 보내다 1932년 학교를 중퇴, 13세의 나이로 정규 교육을 끝낸다.
그러나 많은 아프리카 출신 여성작가들처럼 그는 독학으로 학업을 계속하며 어린시절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특히 영국에서 주문해 읽었던 책들은 현실로부터 상상의 세계로 도피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레싱은 “어렸을 땐 어떻게 하면 이 불행한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만을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불우했던 어린시절이 나를 소설가로 만들었다”고 자주 말한다.
어머니와의 갈등으로 15세에 집을 나온 레싱은 간호보조사를 첫 직업을 택했다. 이 시절 레싱은 성적이고 로맨틱한 판타지에 탐닉하며 소설쓰기를 계속하는데, 이때 처음으로 남아프리카 잡지에 게재했다.
레싱은 두 번의 결혼과 이혼으로 세 자녀를 두었는데, 결혼과 출산은 거침없이 이뤄졌다. 18세이던 1937년 레싱은 전화교환수로 일하면서 이듬해 프랭크 위즈덤과 결혼, 두 자녀를 낳았다.
6년간의 결혼생활 후 위즈덤과 이혼한 레싱은 이혼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을 겪으며 공산주의자 모임인 ‘레프트 북 클럽(Left Book Club)’의 회원들과 가까워지는데, 이때 만난 이 모임의 핵심 멤버 고트프리드 레싱과 2년 뒤 재혼, 아들 한 명을 낳았다. 결혼생활은 4년밖에 지속되지 않았지만, 이 결혼을 통해 그는 레싱이라는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서른살이던 1949년 아들과 영국 런던으로 이주한 레싱은 이해 첫 소설 <초원은 노래한다> 를 발표하며 전문 작가로서의 이력을 시작한다. 그의 소설은 아프리카에서의 경험에 기반한 매우 자전적인 소설들로 어린시절의 기억과 원주민과 식민지인의 갈등 등을 다양한 정치, 사회적 관심사와 함께 그린다. 그러나 레싱은 전후 공산주의 운동에 점점 환멸을 느껴 1956년 영국 공산당을 탈퇴했다. 초원은>
여성의 자아 문제를 다루면서도 페미니스트 작가로 불리는 것은 극도로 싫어하는 레싱은 소설 외에도 가장 좋아하는 동물인 고양이에 대한 책을 비롯해 자서전 등 다양한 논픽션을 썼다.
2001년 스페인 최고권위의 아스투리아스 왕세자 문학상을 받았으며, 이탈리아의 프레미오 그린차네 카보우르상, 데이비드 코헨 영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런던에 살고 있는 레싱은 어린시절 말라리아 예방약을 너무 많이 먹은 탓으로 청력을 잃어가고 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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