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관악구에 살면서 세금 꼬박꼬박 냈는데,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은 전혀 없네요.”
서울 관악구청의 개청식이 있던 11일. 새 청사 구경에 나선 관악구 봉천동 주민들이 여기저기서 불만을 터뜨렸다. 그도 그럴 것이 910억원(시비 441억원)의 돈을 들여 연면적 3만2,370㎡, 지상9층 지하2층 규모의 청사를 새로 지었지만 구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이나 휴식공간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관악구는 1970년대 중반에 건립된 청사가 낡아 2005년 5월에 허물고, 같은 자리에 신청사를 지었다. 새 청사는 관악산을 상징하는 역동적인 디자인에다, 투명하고 청렴한 행정을 강조하기 위해 외부에서 안을 볼 수 있도록 건물 외관을 유리로 덮었다.
구가 지역 주민들을 위해 내 준 공간은 민원 업무에 필요한 2층의 세무과와 재무과, 1층의 민원 봉사과와 지적과, 지하 1층의 자동차 등록 민원실이 전부다. 지하 1층에 헬스장이 있지만 그마저 ‘직원전용’ 체력단련실이다.
또한 5층에 자리잡은 구청장 집무실은 응접실과 회의실을 겸해 훨씬 넓어졌다. 탈의실과 내부화장실, 부속실(비서실)을 포함한 구청장실 면적은 165㎡로 2002년 행정자치부가 지자체에 권고한 직무관련 면적 99㎡를 훨씬 웃돈다. 이 기준에 따르면 165㎡는 서울시장, 도시사의 집무실 면적에 해당한다.
이날 이웃들과 청사 구경에 나선 봉천동 주민 김모(39ㆍ여)씨는 “공사가 끝나면 깔끔해진 청사 안에서 친구들과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공간은 있을 줄 알았다”며 아쉬워 했다.
개청식에 참석한 구민 정모(58ㆍ남)씨도 “새청사가 생각했던 것보다 웅장하다”며 “많은 서민들이 살고 있는 관악구의 청사가 이렇게 크고 고급스럽게 지어져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내 25개 구청 중 관악구의 재정 자립도는 최하위 수준이다.
이날 개청식 행사가 시작되기 직전 민주노동당 당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은 행사장 인근에서 ‘호화 신청사 건립 규탄대회’를 열기도 했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청사건립 기금조성을 위해 구민복지예산에서 매년 수십억원씩을 떼더니 결국 자신들만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고 꼬집기도 했다.
구민을 위한 공간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구청 관계자는 “500석 규모의 8층 강당과 190석 규모의 9층 식당을 구민 결혼식장 등으로 개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이 관계자는 “지하 1층의 체력단련실도 이용 시간대를 구분해 개방하는 등 구민들이 새청사를 십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성북구 마포구 금천구 등 12개 구청도 청사를 건립 중이거나 추진하고 있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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