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미국, 마피아의 아지트. 건장한 조직원 여러 명이 한 여성에게 매를 맞고 있다. ‘짝’하며 따귀 때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여성의 발에 차인 육중한 사내가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진다. 그런데 이게 웬 일. 하이킥을 날린 주인공은 한국적 여성상의 전형으로 손꼽히는 탤런트 김미숙(48)씨다.
몸매가 다소 드러나는 검은 티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은 그녀에게서 이제까지 보아왔던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영어로 쏟아내는 험악한 대사라니. 10일 방송을 시작한 SBS 수목드라마 <로비스트> (연출 이현직, 극본 주찬옥ㆍ최완규)에서 볼 수 있는 김미숙씨의 모습이다. 미국 마피아 두목의 부인이자 로비스트 마담 채(채영옥)로 분한 그녀를 촬영장에서 만났다. 로비스트>
“극 중에서 상대방의 따귀를 때려본 적은 있지만 그렇게 다양한 부위를 여러 차례 때려보기는 처음이었어요. 왜 그리 떨리던지. 오로지 ‘어떻게 하면 내 액션이 절도 있고, 당차 보일까’만 걱정하면서 촬영에 임했죠.” 차분하게 흘러나오는 그녀의 음성을 듣고 나니 그제야 예의 ‘김미숙다운’ 모습이 드러난다.
“마담 채는 야망이 있는 여성이에요. 남성들의 세계에 뛰어들어가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투지를 불태우는 인물이죠. 그녀는 여성적 매력까지 무기로 사용할 줄 아는 교활함을 가졌어요.” 그녀의 인물 분석이 이어졌다. 마담 채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자신의 심복인 해리(송일국)를 유혹해 적당히 이용하기도 한다. 다만 아들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할 줄 아는 살모사와 같은 역할이랄까.
이런 냉혹한 여인을 그려내고자 김씨는 몇 가지 변모를 감행했다. “마른 체형이라야 카리스마가 제대로 뿜어져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극을 준비하면서 체중을 4Kg 정도 줄이려고 다이어트를 했는데 몸이 처지고 힘이 없어서 연기를 할 수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2Kg을 감량하는 선에서 멈췄죠.” 비쩍 마른 체형으로는 카리스마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지 그녀는 극 중에서 금발 가발을 쓰고, 의상도 검은색이나 흰색을 주로 입는단다.
그녀가 <로비스트> 의 마담 채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적 어머니의 역할에서 벗어나 올드미스나 전문직 여성을 연기하고 싶었죠. 그러던 와중에 <로비스트> 제의가 들어왔고요. 섭외 당시에는 미국에서 로비스트를 키우는 역할로 끝나는 것이었는데 나중에 대본이 수정돼 극 중반부터는 한국에서 직접 로비스트로 활동하게 됩니다. 마피아 두목의 아내, 로비스트로 변신했으니 어느 정도 꿈을 이룬 것 아닌가요.” 로비스트> 로비스트>
팔색조의 매력을 발산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그녀는 예의 겸손한 모습이다. 어떤 장면에서 카리스마를 가장 진하게 느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카리스마요? 글쎄요.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 전에 시청자분들이 평가하시는 게 순서 아닐까요. 전 그저 제가 해석한 인물을 보여드리는 것뿐이죠”라며 손사래를 친다.
남편과 아들 승민(8), 딸 승원(6)이에게 “아내와 엄마의 자리를 자주 비워 미안할 따름”이라는 김미숙씨는 요즘 <로비스트> 외에도 SBS 주말드라마 <황금신부> , 내년 5월 개봉을 앞둔 영화 <연인> 을 찍느라 눈코 뜰 새 없다. 그녀는 “수, 목요일 <로비스트> 의 카리스마 김미숙과 주말 <황금신부> 의 꿋꿋한 어머니 김미숙을 비교해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녀의 새로운 모습은 11일 방송분부터 공개된다. 황금신부> 로비스트> 연인> 황금신부> 로비스트>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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