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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내시古宅의 꼭꼭 숨은 안채엔 그리움이 서성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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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내시古宅의 꼭꼭 숨은 안채엔 그리움이 서성이고…

입력
2007.10.1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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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사극 드라마가 TV 브라운관을 장악하고 있는 요즘, 특히 내시를 주제로 한 <왕과 나> 가 인기를 끌고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극의 조연 역할에 만족해왔던 내시를 극의 전면에 등장시킨 것이 인기의 한 비결일 것이다.

구중궁궐 속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왕을 받들며 살았던 그들. 갖은 허드렛일을 하는 심부름꾼에서 종종 왕의 조언자이자 책사로서 역할을 해왔던 그들. ‘역사의 그림자’로 살아왔던 ‘거세된 자’ 내시의 삶은 어땠을까.

경북 청도군 금천면 임당리에 내시 고택이 있다. 1500년대부터 400여년 간 16대에 걸친 내시 가계가 이어져온 집이다. 혹 모르는 사람들은 내시가 무슨 집이 있고, 가정이 있겠냐 하겠지만 내시들도 직급이 높아지면 일반인처럼 결혼도 하고 집을 사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이 고택은 조선시대 궁중 내시로 봉직하고 통정대부 정3품 벼슬까지 올랐던 김일준(1863~1945)이 만년에 낙향해 여생을 보낸 곳이다. 고택을 조사하다 보니 사당의 바닥 자리 밑에서 입향시조 이후 15대까지 기록돼 있는 축문이 나왔다 한다. 실무 직함과 이름, 산소의 위치 등이 소상히 기록돼 있고 시조가 이곳에 정착한 시기와 양자를 들여 이어온 내시 가계의 내력을 증명하고 있다.

김일준은 16대 손으로 그의 양아들인 17대는 내시 직첩을 받았지만 갑오경장 이후 내시제가 없어지면서 실제 내시생활은 하지 않았고, 18대부터는 양아들이 아닌 정상적인 부자관계가 이뤄져 가계를 잇고 있다고 한다. 내시가의 자손들은 대처로 나가 살고 있어 현재 이 고택은 비어있다.

솟을대문 우뚝 솟아있고 사랑채, 안채, 사당 등을 갖추고 있는 내시 고택. 다른 옛집들과 같은 기와집일텐데 뭐 다른 게 있겠느냐 하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시가’ 이기에 특별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솟을대문을 열고 들어가 보면 좌측으로 비스듬히 자리잡은 사랑채가 안채를 바라보고 섰다. 그 빛 바랜 사랑채에선 안채로 누가 드나드는지를 감시의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는 강마른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중사랑채를 끼고 있는 안채는 빼곡하게 둘러싼 담으로 사방이 막혀있다. 일반 사대부가보다 엄격하게 안채의 노출을 꺼리고 출입을 통제하는 구조다. ‘거세된 자’로서의 삶도 기구하지만 그를 지아비로 모시고 살았던 여인네들의 ‘강요된 고립’도 견디기 힘들었음을 느낄 수 있다.

안채 마당에 들어서보니 안채가 앉은 방향이 북북서향이다. 주변 산세로 볼 때 충분히 볕 잘 드는 남향이 가능한데도 왜 이렇게 지어놓은 걸까. 궁을 떠났지만 궁궐의 ‘임’을 향한 단심(丹心)은 변하지 않았음을 집의 구조로 보여주고 있다.

마당 가득 부서진 하얀 자갈이 깔려있다. 청도 문화관광해설사인 박윤제(57)씨는 “언제나 어둑할 수 밖에 없는 북북서향의 단점을 이 하얀 자갈의 간접 조명으로 보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을볕에 난반사하는 마당의 하얀 자갈 만큼이나 반짝이는 지혜이다.

그는 “내시가이다 보니 고택의 구조에서 아이들을 위한 배려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툇마루나 대청이 허리높이로 높지만 신발 놓는 섬돌 하나만 있을 뿐 이를 오를 계단이 없고, 보통 부잣집에 있을 아이들 공부방도 보이지 않는다. 별당이 없는 것도 별당에 머물 딸이 없기 때문이다.

안채에 딸린 곳간이 2개 동이나 되고 크기도 꽤 넓다. 김일준이 이곳에 내려왔을 때 모아놓은 재산이 무척 많았다고 한다. 그는 주변에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덕을 베풀어 장례를 치를 때 이 일대가 조문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주민들은 이야기한다.

궁궐 주변이 아닌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여러 대에 걸쳐 살면서 조성된 내시가로 지방에서는 이 고택이 유일하다. 2005년 중요민속자료 245호로 지정됐다. 대문은 항상 자물쇠로 닫혀있다. 청도군청 문화관광과(054-370-6372)로 연락해 미리 예약하면 문화관광해설사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주변에 운강고택 등 다른 고택들도 함께 비교 체험할 수 있다.

● 헐티재 넘는길 가을정경 그림처럼

청도의 가을을 만끽하는 또 다른 방법은 여유로운 드라이브다.

대구에서 비슬산 기슭을 통해 청도의 각북면으로 이어지는 헐티재(902 지방도로)가 최근 드라이브 코스로 인기다. 꼬불꼬불 거리는 도로를 타고 올라 헐티재 정상에 오르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평지, 누렇게 익어가고 있는 풍요로운 청도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길가에는 전통찻집 겸 석물원인 아자방을 비롯해 비슬도예촌, 테마카페촌, 비슬산 허브마을 등 다양한 쉴 곳이 있다.

임당 김씨고택을 지나 운문사로 가기 전, 청도군민의 식수원인 운문댐을 둘러싼 도로도 가을 드라이브로 제격이다. 경주와 청돋?있는 20번 국도나 운문에서 운문사로 향하는 69번 지방도. 멈춰서는 곳마다 호수와 산자락이 빚어내는 독특한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새벽이면 나풀거리는 억새 너머로 정한 호숫물이 피워내는 안개의 춤사위를 볼 수 있다.

청도=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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