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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명저 50] <40>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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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명저 50] <40>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입력
2007.10.1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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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적 민족경제의 확립을 위한 길은 생활하는 민중의 소망을 좇아 국민경제의 내용을 정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 민족의 자립자주의 기초를 조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유신정권이 종말로 치달아가던 1978년 4월. 다소 추상적인 머릿말로 시작하는 경제학자 박현채(1934~1995)의 평론집 <민족경제론> 이 선보인다.

박현채가 누구였던가? 그는 좌익 성향이었던 호남의 지주집안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때 빨치산으로 활동했고, 하산 후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대중강연과 집필을 통해 계급주의적 시각의 경제이론을 전파하던 재야 학자였다. 1971년 대통령선거에서는 김대중 후보의 <대중경제론> 집필에도 참가해 대안경제모델을 내놓기도 했다.

박현채가 김대중 후보의 대선 공약을 통해 중산층과 중소기업 육성, 농공 병진(竝進), 내포적 공업화로 상징되는 자신의 이론을 간접소개한 후 1970년대 신문ㆍ잡지 등에 발표한 글을 묶은 책이 <민족경제론> 이다. 한길사가 발행한 이 평론집은 초판 5,000부가 나오자마자 매진되는 등 젊은 독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빨치산 전력, 인혁당 사건 연루 등 당시 권력에 감시받고 있던 저자의 이력과 김언호 한길사 사장의 표현대로 ‘그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3개월 만에 판매금지조치를 당한다. 판금이 풀린 것은 유신정권이 끝나고 ‘서울의 봄’이 찾아온 1980년 3월. 이후 <민족경제론> 은 변혁운동의 열기로 뜨거웠던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까지 비판적 지식인들의 이론적 자양분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민족경제론> 은 18편의 논문으로 묶여져 있다. 일제 식민지시대의 경제정책,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계획, 차관 도입, 다국적기업 등 각각 소재는 다르지만 문제의식은 공통적이다. 식민지시대를 경험한 지식인 박현채는 해방 이후 한국의 자본주의를 매판자본, 관료주의가 득세하는 식민지자본주의의 연장으로 바라본다. 이를 어떻게 민중의 생활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는 국민경제 단위, 민족경제 단위의 자립적 경제로 변환시킬까 하는 고민이 그것이다.

이 책에 실린 논문 ‘일제식민통치하의 농업I’ ‘일제식민통치하의 공업’ 에서 저자는 토지조사사업이나 회사령 등 일제의 경제정책이 어떻게 조선경제를 일본경제의 일부분으로 종속시켰는가를 규명한다.

가령 일제말 대일무역의 확대 현상에 대해 그는 “이는 일본경제의 일부분으로 종속의 강화, 그리하여 식민지 조선에 있어서 경제발전은 일본내의 산업과 경쟁의 가능성이 있는 부분의 발전이 봉쇄되고 일본경제의 보완적 부문으로서의 파행성을 심화시켜 내포적 공업화의 길을 잃었다”고 평가한다.

이런 인식은 자연스럽게 한일수교와 일본자본의 유입을 통해 경제성장을 추구한 1960, 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박현채는 특히 차관의 무분별한 도입을 비판하는데 “외국자본에 의한 기술독점은 수출기술의 이용에 여러가지 제한을 나타내고 외자에 의한 원료에서 완성품에 이르는 생산과정의 종속적 결합에 의한 지배 현상을 가져온다”며 ‘외자ㆍ수출주도형’ 경제성장 모델에 회의를 드러낸다.

그가 박정희 모델의 안티테제로 제시하는 것은 ‘내포적 공업화’를 동반한, 외세의존적이 아닌 ‘자립경제’ 다. 그의 표현으로 “외자와 수출에 의존하는 외연적 성장모형이 아니라 재생산조건을 스스로의 힘으로 장악한” 모델이다. 이것이 자주성과 자립성, 민주성을 내포한 국민경제의 모델이며 더 나아가 통일된 ‘민족경제’ 의 모델이라는 것이 박현채의 결론이다.

박현채의 이론은 그러나 곧 내자(內資)를 어떻게 동원해야 할지에 대한 논거가 미약하고, 박정희식 발전전략에 대항하기 위한 주장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부딪쳤다. 지금은 진보진영 내부에서조차 외국자본이 주식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대외무역의존도가 60~70%에 달하는 우리경제의 현실을 감안할 때 민족경제론은 “현실적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평가절하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안전망의 붕괴, 양극화, 시장중심주의의 전면화 등 자본주의의 모순이 집약된 신자유주의시대의 대안으로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은 재해석돼야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장상환 경상대 교수는 “박현채 선생의 이론은 한국경제가 의식주에 필요한 기본물자를 충분히 생산하지 못했던 후진적 저생산력 단계에서 제시됐던 주체적 경제발전전략으로서 의미가 있다”며 “이를 요즘에 적용한다면 미국의 서브프라임 주택담보 부실에서 비롯된 금융불안정 사태가 보여주듯 제한없는 외국자본운동의 규제 강화 같은 정책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잣구 그대로의 해석에 매달리지 말고 <민족경제론> 이 내포한 진보성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박현채의 제자로 진보적 씽크탱크인 한국사린墟極П맑恬?설립했던 조석곤 상지대 교수는 “극단적 외향경제로 변모한 한국경제는 기업의 생산기반이 외국에 있는 경우 기업성장의 혜택을 민중에게 얼마나 돌려줄 것인가의 문제와 맞닥뜨리고 있다” 며 “이는 경제의 양적 성장보다 민중의 경제적 자유 실현, 생활권 보장을 우선시했던 선생의 고민과 궤를 같이한다”고 말했다.

<민족경제론> 이라는 책 제목을 자신이 정했다고 밝힌 김언호 한길사 사장은 “ <민족경제론> 에는 우리 국민을 어떻게 잘 먹이느냐 뿐아니라 이웃과 어떻게 잘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묻는 시대정신이 담겨있다”며 “남북의 경제적 통합이 당면과제로 떠오른 요즘 한민족공동체의 경제적 이익, 경제적 복지를 위해 어떤 사상으로 어떤 전략을 구사해야 할 것인가를 시사하는 책”이라고 말했다.

■ 박현채 연보

1934년 전남 화순 출생

1947년 광주서중 입학

1950년 빨치산 입산, 소년돌격중대 문화부 중대장

1961년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 졸업

1964년 제1차 인혁당사건으로 구속

1971년 <대중경제론> 집필 주도

1978년 <민족경제론> 출간

1979년 임동규 간첩사건 연루, 구속

1985년 한국사회구성체 논쟁 주도

1988년 한국사회연구소 설립

1989년 조선대 경제학과 교수

1995년 별세

이왕구 기자 fab4@hk.co.kr

■ 박현채 사상 계승자 조석곤 교수

정태인 전 청와대 경제비서관, 정권하 한신대 교수 등과 함께 박현채 사상을 가장 충실히 계승하고 있는 경제학자로 꼽히는 조석곤(사진) 상지대 교수. 그는 요즘 박현채의 사상을 계승할 ‘민족경제연구소’ 설립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60~70%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우리경제가 외향경제를 지향할지 자립경제로 나아가야 할지의 논쟁은 더 이상 무의미해졌지만, 민족경제이론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가 박현채 사상에서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민족주의’ 가 아닌 ‘민주주의’ 의 문제다. “박현채 선생은 글마다 민주주의의 보장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민주화투쟁을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뤄냈지만 경제의 양극화로 민중들의 기본적 삶이 위협받으면서 민중들이 입법자, 행정가를 통제할 만한 동력을 상실한 것이 가장 큰 문제지요. 이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택, 교육, 의료 같은 기본적 생존조건들을 시장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공공영역이 담당해야할 ‘사회적 가치재’로 본 박현채의 시각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이는 박현채 사상의 핵심을 ‘민중성’(정태인) ‘공공성’(조희연)으로 파악한 다른 진보학자들의 시각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최근 조교수가 ‘지구화 시대의 공공성’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이는 몇년째 난항을 겪고 있는 민족경제연구소가 설립된다면 핵심적으로 취급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암시한다.

그는 구체적 과제로 “박현채 사상을 횡적으로 연구할 기반을 만드는 작업이 긴요하다”고 덧붙였다. <박현채 전집> 의 완간으로 종적인 연구의 바탕은 마련됐지만, 경제 정치 사회 등 영역별로 그 사상을 파고들기에는 어려움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조교수는 “신자유주의가 ‘효율성’을 절대선으로 보는 경제담론이라면 민족경제론은 ‘형평성’을 추구하는 대안이론”이라며 “민중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그 바탕에 깔고 있었던 박현채 선생의 사상을 계승하는 것은 바로 이런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d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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