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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청도 운문사, 새벽예불에 가을이 깨어나고 사물소리에 가을이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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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청도 운문사, 새벽예불에 가을이 깨어나고 사물소리에 가을이 저문다

입력
2007.10.1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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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기운에 몸이 무거웠는지 미리 맞춰놓은 알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눈을 떠보니 새벽 3시가 넘었다. “아뿔싸.” 서둘러 사하촌의 여관을 빠져나와 운문사로 차를 달렸다.

운문사 종각을 들어서자 이미 큰 법당에선 목탁소리와 함께 새벽예불이 시작됐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권에서 ‘새벽예불 중 가장 으뜸’으로 ‘가톨릭의 그레고리 찬트에 비견되는 장엄함이 있다’고 찬사한 운문사의 새벽예불이다.

새벽 3시 목탁을 두드리는 도량석으로 시작됐을 새벽예불. 승방의 불이 켜지고 진한 괴색 가사를 어깨에 두르고 줄지어 나온 스님들이 대웅전에 모여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불경을 암송하는 엄숙한 의식이다.

대웅전에서 울려오는 비구니들의 저음의 합창으로 이뤄진 예불소리. 그 장중한 음악은 파이프 오르간을 울리듯 대웅전 건물을 울리고, 절 마당을 울리고, 절을 둘러싼 산자락을 울리고는 캄캄한 새벽 하늘로 퍼져 오른다.

세속과 떨어진 여승들만의 목소리여서일까. 비장감마저 느껴지는 엄숙한 떨림이다. 차마 그 속에 함께 끼여있을 수 없어 홀로 대웅전 앞 만세루 기둥에 기대섰다. 예불소리를 듣고 있자니 속진의 때가 벗겨지는 듯 살갗이 파르르 떨려왔다.

오전 4시15분께 새벽예불이 끝나고 스님들은 줄지어 ‘불이문(不二門)’ 안 안채로 총총이 사라져간다. 대웅전의 불도 꺼지고 경내엔 다시 어둠과 적막만 내려앉았다. 고개를 드니 구름 사이로 새벽하늘의 별들이 반짝였다.

숙소로 돌아와 컵라면으로 새벽의 허기를 달랜 후 날이 밝기를 기다려 운문사의 암자 중 하나인 북대암으로 향했다. 가파른 경사의 길을 허덕허덕 10여분 오르니 거대한 암벽에 제비집처럼 붙은 암자가 나타났다. 운문사처럼 비구니들만 있는 암자다. 북대암 마당은 운문사를 가장 잘 내려다 보는 전망대다. 초록의 품 안, 산봉우리를 꽃잎 삼아 화판의 중심에 여유롭게 자리한 운문사 전경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암자 앞 뜨락엔 한 보살이 산에서 주워왔는지 도토리가 한 포대가 펼쳐져 가을 볕을 기다리고 있다.

북대암을 내려와 밝은 날의 운문사를 다시 찾았다. 운문사는 비구니 사찰이다. 260여 명의 학인스님들이 공부하는 4년제 승가대학, 속세로 따지면 여승들만을 위한 여자대학인 셈이다.

신라 진흥왕 21년(560년) 한 신승에 의해 창건됐다고 전해지며 진평왕 30년(608년) 원광국사에 의해 중창됐다. 원광국사는 화랑 귀산과 추항에게 세속5계를 일러 준 인물이다. 운문사는 고려 때 일연이 머무르며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이기도 하다. 1958년 불교정화운동 이후 비구니 전문 강원으로 자리잡았다. 87년 승가대학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현재 1~4학년 학인스님과 강사 스님들이 연구하는 수행도량이다. 학인스님들은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즉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청규를 실천한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솔숲을 지나 운문사 종각을 들어서는데 ‘둥, 둥, 둥’ 법고 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간에 웬 북소리인가.” 걸음이 빨라졌다. 만세루에서 두 명의 학인스님이 법고 연습을 하는 중이다. 대학의 동아리처럼 법고를 배우는 모임이 있다더니 아침 일찍부터 법고 연습에 나선 모양이다.

운문사에서 꼭 들어야 할 소리의 첫번째가 새벽예불이라면 두 번째는 사물이다. 가죽 있는 축생에게 진리를 전한다는 법고, 물속의 중생을 제도한다는 목어, 하늘을 나는 새와 허공을 헤매는 영혼을 천도하는 쇠로 된 운판, 지옥의 중생까지 제도한다는 범종을 함께 일컬어 사물이라 한다. 새벽예불 직전과 저녁 공양 이후 오후 5시45분께 하루에 두 번 사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운문사에는 비로전(보물 제835호), 삼층석탑(678호) 등 보물이 7개 있고, 만세루 옆의 땅으로 길게 가지를 뻗친 500년 넘은 처진소나무가 천연기념물 180호로 지정돼 있다. 온몸으로 기도를 올리는 오체투지를 하는 양, 모든 가지가 땅으로 치내려 마치 엎드려 무릎을 꿇고있는 모습이다. 이 나무는 매해 음력 삼월삼짇날 막걸리 12말을 받아 먹고 기운을 보충한다. 운문사 (054)372-8800

주렁주렁 감천지서 감와인 한잔‘눈도 입도즐感’

가을을 한 색깔로 표현한다면? 핏빛 단풍일까, 은빛 억새꽃일까 아니면 샛노란 은행잎일까. 탐스럽게 익은 빨간 사과나 누런 벼이삭, 알알이 터져나온 알밤도 가을의 색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만일 그 모든 색을 한데 버무려 중간색을 뽑는다면 잘 익은 감의 빛이 될 것이다. 풍요롭고 은근한 주홍빛 감의 색 말이다.

경북 청도는 지금 감 천지다. 청도 땅 어딜 가나 도로변이나 집집의 담장 위로 축축 늘어진 감나무 가지들이 모두 주먹만한 감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논농사보다 힘도 덜 들고, 이문도 많이 생기는 터라 상당수 주민들이 논을 메워 감나무를 심어, 청도의 감 생산은 매해 늘고 있다. 전국 감 생산량의 30%를 차지한다고 한다. 지난달에는 정부로부터 반시나라 지역특구로 지정되기도 했다.

청도 감은 반시라 부른다. 접시처럼 납작하고 씨가 없는 게 특징. 재미있는 것은 이 감나무를 뽑아 다른 지역에 심으면 씨가 생긴다고 한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의 지형에다 유독 안개가 많이 끼는 청도 땅의 특성 때문이라고 한다.

청도반시는 곶감이나 단감이 아닌 달콤한 홍시로 애용된다. 씨가 없어 곶감을 만들면 모양이 살지 않는다고. 곶감 대신 껍질을 깎은 감을 세 조각으로 쪼개 꼬들꼬들하게 말려 간식으로 먹는 감말랭이가 특산품이다. 이외에 반만 말린 반건시, 얼린 아이스홍시로도 만들어진다.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의 폐 철도터널이 최근 관광지로 뜨고 있다. 1904년 완공해 1937년 마을 아래로 새 철로가 놓일 때까지 경부선 철마가 지나던 터널이다. 무용지물이던 이 터널이 훌륭한 와인창고로 다시 태어났다. 이 지역에 기반을 둔 '청도와인'이 청도반시를 이용해 세계 처음으로 감와인을 생산, 2004년 '감그린'이란 브랜드를 출시했다. 청도와인측은 작년 3월부터 이 터널을 와인창고로 이용하고 있다. 내부 온도가 사시사철 15도를 유지하는 터널은 천혜의 '와인셀러'다. 시멘트 콘크리트가 아닌 황토벽돌로 아치형 천장을 삼은 터널의 내부도 운치있다. 터널의 총 길이는 1,045m. 청도와인측은 이중 450m를 일반 고객을 위한 공간으로 꾸밀 계획이다. 나머지 공간에 와인을 보관한다. 터널 입구에는 현재 감와인 카페가 운영돼, 터널에서 와인의 향을 느껴보는 이색 체험도 가능하다. 일반에게 개방된 400여 m의 어둑한 터널을 연인의 손을 잡고 걸어볼 수도 있다. 청도와인 (054)371-1100

마당을 가득 채운 빨랫줄에 널려있는 감물 배인 광목천의 펄럭임도 청도가 자랑하는 가을 풍경이다. 청도에 감을 이용한 천연염색 공방은 '꼭두서니' 등 30여 곳. 예약을 하면 감물염색 체험도 할 수 있다. 꼭두서니 (054)371-6135

감물 들여보세요… 가울이 묻어날듯

26~28일 청도읍 청도천 둔치에서는 청도반시축제가 열린다. 올해 두 번째인 축제에서는 감물염색 체험, 감물 탁본 체험, 감팩 체험 등 다양한 체험행사가 마련됐다. 홍시 빨리 먹기, 반시 정량 맞추기, 반시 당도 맞추기, 반시 껍질 길게 깎기 등 감 관련 이벤트도 빠지지 않는다. 감장아찌, 감동동주 감쿠키, 감경단, 감식혜 등 감을 이용한 다양한 요리가 선보이고 시식회도 준비됐다. (054)370-6376

청도에서의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농부와닷컴(www.nongbuwa.com, 054-373-5565)을 이용하면 축제기간 감따기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체험료 5,000원을 내면 직접 감 20~30개를 따서 포장해 갈 수 있다.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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