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날씨 녹인 열정·순수싸늘한 눈총 받은 진행 미숙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훌쩍 지났다. 초가을답지 않게 차가워진 공기는 10분을 견디기 힘들 정도로 매서웠지만 경기 이천시 설봉공원을 찾은 팬들은 그저 흥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잠든 아이를 업고 나온 젊은 아버지부터 교복을 입은 채로 자리를 깔고 앉은 학생들까지, 추운 날씨와 늦은 시간은 이들에게 그다지 큰 불편이 아닌 듯했다.
지난 주말 이곳에서 열린 '원 월드 뮤직 페스티벌'은 미국 팝 음악에 찌든 이들에겐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한 행사였다. 20대 이하 연령층에게 대부분의 소비를 기대하는 국내 가요시장의 상황에 비춰볼 때 참여한 뮤지션 다수가 남미 등 제3세계를 주무대로 활동하는 이들이라 흥행에 큰 기대를 걸 수 없었던 축제였다.
하지만 뚜껑을 연 결과는 예상을 빗나갔다. 이방 린스, 수산네 룬뎅 등 좀처럼 국내 무대에서 접할 수 없었던 세계적인 뮤지션(그들은 미국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생소하지만 분명히 톱 클래스 음악인들이다!)의 등장에 설봉공원으로 모여든 팬들은 금세 5,000명을 넘었다.
비록 6년만에 무대에 선 가수 윤상의 공연도 포함됐지만, 평소 한산하던 이천시내에 빚어진 교통체증을 그의 출연으로만 설명하기는 힘들었다. 더구나 공연은 새벽 3시가 지나도록 계속됐지만 수백명의 팬들(대부분이 이방 린스의 팬)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었다.
현장을 찾은 심재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무처장은 "늦은 시간이 되도록 추위를 참아가며 무대 앞을 지키는 이들이야말로 우리 대중문화의 희망"이라며 "이들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공연은 음악 팬들의 획일화, 시장 붕괴로 속이 끓었던 대중음악계에 분명히 고무적인 행사였다. 하지만 주최측의 운영 미숙, 몇몇 아티스트의 이기적인 진행이 그나마 열정을 포기하지 않는 음악 팬들에게 찬물을 끼얹은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새벽까지 남아있던 한 팬은 "각 팀 간 세팅 시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공연이 3시간이나 연장된 점, 이어질 팀을 배려하지 않고 앙코르 곡을 부른 가수의 매너가 못내 아쉬웠다"고 말한다.
무대가 거의 끝날 무렵 짧은 머리의 백인 청년 한 명이 기자들을 찾았다. 다음날 공연 예정인 로스 반반의 공연기획자로 자신을 소개한 산티아고 헤레라씨는 "완벽한 공연 준비를 위해 무대를 둘러보고 있다"고 말했다.
조금 있으면 동이 트는 시간이었다. 주최측에 맡겨버릴 수도 있는 일을 스스로 챙기며 밤잠까지 포기하는 프로 정신이 우리에게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사라지질 않는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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