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흐센 마흐말바프, 폴커 슐뢴도로프, 임권택…. 열두 번째를 맞은 부산영화제에는 이름만으로도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는 거장들이 대거 참석했다.
그러나 영화제의 진짜 재미는, 광채를 내뿜는 보석보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을 발견하는 데 있다.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 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vision)' 부문에 초청된 양해훈(28) 감독도 그런 원석 가운데 하나다. 저수지에서>
그의 필모그래피를 채우는 것은 다큐멘터리 하나를 포함해 단편 4편이 전부. 하지만 대구지하철 방화사건 범인을 사회적 약자로 바라본 <실종자들> 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고, 단 하루 만에 제작한 <친애하는 로제타> 는 올해 칸영화제 단편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친애하는> 실종자들>
그의 영화를 관통하는 것은 폭력과 그 폭력에 노출된 인간의 모습을 관조하는 시선. 인터뷰가 익숙지 않은지, 답변이 다소 산만하게 흩어지는 그를 해운대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라는 소재를 첫번째 장편(<저수지에서 건진 치타> )의 소재로 삼은 까닭은. 저수지에서>
"이것저것 시나리오를 쓰느라 집에 틀어박혀 지내면서, 본의 아니게 히키코모리 생활을 했다. 슈퍼에 가도 아줌마가 '얘는 왜 이 시간에 츄리닝 입고 담배 사러 올까', 이런 눈빛으로 보니까 더 나가기 싫어지고….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되고, 히키코모리 인터넷 카페에도 가입했다. 알게 될수록 굉장히 영화적인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고 언젠가 나가야 하지만, 점점 더 닫힌 공간으로 축소하는 인간이니까."
-얇게 언 저수지 위를 걷게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 복잡하게 관계가 꼬이는 인물들이 서로 가학ㆍ피학의 폭력을 되풀이한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조금씩 전진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힘든 시간을 지날 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할 때, 사람은 정체하고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 순간에도 사람은 성장하고 한 걸음씩 나아간다.
학교폭력으로 인해 히키코모리가 된 주인공이 계속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려고만 한다. 처음엔 얼음판을 건너지 못하고 돌아섰지만, 고통의 시간을 거친 다음엔 그 지점에서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사람도, 영화도 그렇게 전진해야 하는 것 아닐까."
-영화 속에서 주인공의 독백, 혹은 감독의 언어가 스크린 위에 타이핑되는 문자의 형태로 나타난다.
"히키코모리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면, 말투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관적이고 냉소적이다. 댓글 한 줄도 너무나 처참하다. 그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
다른 이유는…. (이런 것이) 작가의 전지적 시점에 의한 내레이션인데…한국어로 된 영화에 한국어 자막이 나오는 것은 상당히 색다른 느낌을 준다. (이런 기법이) 관객에게 문학적 즐거움을 주는 효과가 있다."
-에필로그 부분에, 변화한 주인공의 모습을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목격하게 된다. 차에 타고 있는 시선은 누구의 것인가.
"(비현실의 세계로 빠져드는 주인공을 세상으로 인도하는) 여자친구라고 느껴지지 않았나? 한국의 영화감독들은 여자를 어머니, 창녀, 천사 셋 중 하나의 모습으로만 묘사하는데… 난 책임을 지는 주체의 모습으로 여자 캐릭터를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실제 운전도 여자친구 역을 맡은 배우가 하게 했다. 그 모습이 영화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인디영화, 독립영화 감독으로 불려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나.
"사실 난 '독립영화'라는 깃발을 들고 앞에 선 입장은 아니다. 기회가 된다면 상업 영화도 하고 싶고…. 독립영화를 한다는 게 '우리 힘들게 찍었으니까 감안하고 봐 주세요', 이렇게 말할 아마추어리즘의 근거는 아니다.
하지만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최소한의 통로는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 1년에 약 1억명이 영화를 보는데, 그 중 독립영화 관객은 100만명도 채 안 된다. 그 비중이 최소한 10%까진 올라서야 한다. 그래야 관객도 재미있는 영화를 더 많이 볼 수 있다."
부산=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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