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 학고재추사의 미는 '怪'의 미… 위작 논란도 재연돼
10월 10일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ㆍ1786~1856)의 기일이다. <김정희> 를 쓴 유홍준(58ㆍ문화재청장)의 말처럼 “세상에는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 누구나 추사 혹은 완당(阮堂)이라는 그의 호를 알고 추사체를 인쇄물로나마 한두번은 보았겠지만, 막상 그의 삶과 학문적ㆍ예술적 업적을 아울러 쓴 전기는 사후 150여년이 되도록 없었다. 김정희>
유홍준이 2002년에 모두 3권으로 쓴 <완당평전> 은 사실상 완당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 평전 작업이었다. <김정희> 는 ‘알기쉽게 간추린 완당평전’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유홍준이 <완당평전> 을 반 정도 분량으로 줄여서 한 권으로 2006년에 낸 책이다. 완당평전> 김정희> 완당평전>
유홍준은 김정희의 연대기를 출생부터 중국 연경학계와의 교류, 출세와 완당바람, 제주도ㆍ북청 유배시절, 말년의 과천시절 등 10개의 장으로 구분해 특유의 입담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는 “추사는 정통적인 순미(純美) 우미(優美)가 아니라 반대로 추(醜), 미학 용어로 말해서 ‘미적 범주로서의 추미(醜美)’를 추구했다.
즉 파격의 아름다움, 개성으로서 괴(怪)를 나타낸 것이 추사체의 본질이자 매력”이라고 썼다. <완당평전> 은 출간 이후 커다란 찬사도 받았지만, 유홍준이 자료로 사용한 추사 작품들의 위작 시비를 촉발하면서 우리 고미술계ㆍ학계의 해묵은 문제점을 다시 드러낸 계기도 됐다. 완당평전>
미술사학자 강우방은 <완당평전> 에 실린 160점의 글씨 중 ‘茗禪(명선)’ ‘殘書頑石樓(잔서완석루)’ 등 일반에게도 추사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것들을 포함해 절반 가량이 추사의 글씨가 아니거나, 진작이 아니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추사 150주기를 기념해 지난해말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추사 문자반야’ 전에서도 위작 논란은 재연됐다. 완당평전>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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