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지방 출장을 다녀오는 열차 안에서 코스닥 벤처기업의 사장 한 분을 만난 적이 있다. 외환위기 후 기업들이 리스크 관리에 치우쳐 투자를 줄여 미래의 성장동력을 잃고 있다는 소식이 신문지상을 뒤덮고 있던 시기였다.
물론 그 배경에는 과도한 규제도 한 몫 했지만 그 사장은 더 중요한 게 ‘마인드’라고 지적했다. “글로벌화로 더 이상 우물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판단해 일년의 절반을 해외에서 보낸 덕에 국내시장의 90%, 북미 50%, 유럽 35%의 점유율을 가지게 됐다”고 자랑했다.
그는 “이제는 생산성과 효율성이 아닌 투자의 시대”라며 진입장벽을 넘을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고, 200여명의 직원을 전부 알 정도로 사람에 대한 투자에 몰두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언급대로 대세는 바야흐로 ‘투자의 시대’로 가고 있다. 주식시장에서도 투자에 힘쓴 기업의 주가는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는다. 과거 반도체 업황이 어려울 때 역으로 과감한 투자를 해 세계시장을 제패한 국내 반도체 업체나 과잉투자라는 오명을 극복해낸 조선업 등의 주가는 지금 2000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치솟았다.
이유는 분명하다. 냉전 이후 러시아 중국 인도 등 잠재력이 큰 경제블록에 투자해 그 과실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지 않고 인적, 지적, 물적 자산에 꾸준히 투자하면서 글로벌 경쟁에 정면으로 맞선 결과다.
이런 관점에서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국내 금융기업들의 느려 변화 속도다. 금융시장 완전개방과 함께 이미 글로벌 거대자본과의 치열한 싸움은 시작됐지만 눈앞의 이익만 좇는 과거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약정 위주의 증권사 영업관행, 예대마진 중심의 은행 수익, 고객의 필요와 상관없이 팔기만 하면 끝인 보험 영업 등이 그렇다.
필자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시장지배력을 가진 우량 기업군에 관대한 태도를 취해왔다. 하지만 앞으로 해외 시장에 대한 진취적인 도전과 노력을 보이는 기업군과 글로벌 마인드와 동시에 사람에 대한 투자에 열심인 CEO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그런 기업에 대한 투자를 권하려 한다.
삼성증권 투자전략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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