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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열차 화장실 관계로 잠시 정차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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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열차 화장실 관계로 잠시 정차를… "

입력
2007.10.10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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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운전 사정으로 잠시 정차하겠습니다.”

지난달 중순 평일 오후, 수도권 지하철 2호선을 운행하던 기관사 김모(48)씨는 정차를 알리는 안내방송을 내보낸 뒤 급히 선로 밖으로 뛰어 내렸다.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는 지하철을 선로 위에 세워야 했던 그의 사정은 다름 아닌 참고 참았던 소변이었다. 김씨는 “물론 ‘그까짓 일로 열차를 멈추냐’고 비난할 수 있다”며 “하지만 기관실에 꼼짝없이 앉아 3시간 넘게 운전해야 하는 기관사들로서는 1년에 한두 번은 꼭 치러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멀고 먼 화장실

배설은 인간의 생명을 지키는 본능적 행위다. 그러나 이런 생리 욕구를 제때, 마음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우리 주위엔 의외로 많다. 업무 특성상 오랜 시간 자리를 떠날 수 없는 운전기사, 대형할인점 계산원, 전화 교환원, 건설 근로자 같은 이들에게 화장실은 ‘머나먼 천국’이다. 그나마 이들 작업장에는 화장실이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제때 화장실에 가지 못하는 환경은 건강 보호 차원을 넘어 개인의 인격과 권리를 침해하는 심각한 인권 문제이기도 하다.

지하철 기관사는 한번 운전을 시작하면 보통 3~4시간 동안 화장실 없는 기관실에 갇혀 있어야 한다. ‘중간에 정차하는 역의 화장실을 이용하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볼 일’을 해결하고 돌아 오기엔 거리가 너무 멀다. 그래서 기관사들은 운전 시작 전에 뜻밖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절대 국과 물은 먹지 않는다. 그래도 갑작스런 설사엔 속수무책이다.

서울메트로노조 승무지부 장기현 사무국장은 “술 마신 다음 날에는 비상용으로 신문지를 갖고 기관실에 들어간다”며 “겉으로 깔끔해 보이는 기관사들에게 이런 말 못 할 고민이 있는 줄 누가 알겠냐”며 혀를 찼다. 승무지부는 현재 모든 지하철 역 승강장 앞 쪽에 기관사용 화장실을 설치해 줄 것을 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파업 쟁점된 ‘화장실 복지’

2004년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에서는 정말 보기 드문 파업이 벌어졌다. 한 하청업체 근로자 10여명이 “근무 중에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며 작업을 거부하고 단식 농성에 들어간 것이다. 이들은 “작업량이 너무 많아 화장실 갈 때도 작업반장 눈치를 봐야 할 정도로 비참하다”며 사측에 개선을 요구했다. 농성이 시작되자 사측은 곧바로 대체인력을 투입했고, 파업에 참가한 10여명은 일자리를 잃고 말았다.

2005년 봄 무려 72일간 파업을 한 울산건설플랜트노조의 주요 요구 중 하나가 ‘건설현장에 화장실을 설치해 달라’는 것이었다. 노조는 사측의 ‘전향적인 조치’를 약속 받고 파업을 끝냈다. 전국건설노조 송주현 정책기획실장은 “아직도 많은 건설 현장에는 근로자용 화장실이 턱없이 부족하거나, 있더라도 관리가 소홀해 이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지저분하다”고 말했다.

건설 근로자들의 줄기찬 화장실 문제 제기는 올 여름에야 결실을 맺었다. 7월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일정 규모 이상의 건설 현장에 화장실과 식당 등 편의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건설근로자의 고용 개선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버스 기사들에게만 유난히 많은 경범죄가 있다. 노상방뇨다. 배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운전을 하다 보면 도로변에서 화장실 찾을 시간이 없다. 종점에 도착하면 잠깐 화장실에 갈 수 있는 시간이 있지만 화장실이 있는 버스 종점은 거의 없다. 전국자동차노조연맹 조중영 조직부국장은 “올 여름 대전 시내버스 노조가 파업을 하면서 버스 기사들이 많이 제기한 문제 중 하나가 화장실 복지였다”고 말했다.

대형할인점, 백화점 등 유통업체의 계산원들도 ‘화장실 복지’에서는 열외다. 수도권 대형할인점 계산원 박모(49)씨가 일하는 지하 2층 매장에는 직원용 화장실이 없다. ‘직원은 고객용 화장실을 쓸 수 없다’는 내부 규정에 따라 그는 2시간에 15분씩 주어지는 휴식시간 때마다 직원용 화장실이 있는 지하 1층까지 가서 급한 불을 끈다.

박씨는 “지하 1층까지 올라간 뒤 화장실 순서를 기다리다 보면 15분도 빠듯하다”며 “특히 손님이 많이 몰리는 주말에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 참을 때까지 참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 80명이 일하는 지하 2층에 화장실이 없다는 게 말이 되냐”며 불만을 터트렸다.

인권 문제로 인식해야

사정이 이런데도 근로자가 화장실을 제때 이용하지 못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건강 변화에 대한 조사나 연구는 거의 없다. 다만 전문가들은 “소변에 있는 세균이나 노폐물이 소변이 나오는 관인 요로를 감염시키는 등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국내 처음으로 대형할인점 계산원 등 유통서비스 여성 노동자의 근로조건과 건강과의 관계를 조사하고 있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김신범 실장은 “인권 보호 차원에서라도 근로자 화장실 문제에 대한 기업과 사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는 “근로자들이 화장실을 제때 이용 못하는 것은 인권 침해의 소지가 높다”며 “인권위에 관련 사건이 접수되면 조사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일환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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