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울산에서 시작된 ‘철밥통 깨기’ 인사실험은 전국으로 확산됐으나 서울시를 제외하고 대부분 지방자치단체에서 용두사미가 되고 있다. 지자체들은 내부 직원들의 반발, 사기저하 등을 이유로 형식적으로 실시하거나 사문화함으로써 ‘무늬만 퇴출제’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6월 정부부처로서는 처음으로 부적격자를 제재하는 인사쇄신안을 마련, 19명을 선발해 교육프로그램에 참가시켰으나 본인 요청으로 면직된 1명을 제외한 18명 전원을 최근 업무에 복귀시켰다. 행자부는 인사쇄신안의 추가시행 여부조차 결정하지 않고 있다.
과학기술부도 사정은 비슷하다. 최근 2년간 고과 하위 10%에 2회 연속, 또는 합계 3회 포함된 10여명을 9월부터 교육프로그램에 참가 시키고 있으나 일반 교육과 구별이 안돼 제재효과가 미흡하다는 평가다.
공무원 퇴출제의 진앙지인 울산도 면직 등 강경조치에서 한 발 물러섰다. 퇴출대상자를 선발할 때 10여가지 항목별로 점수를 매기는 다면평가를 도입하고 동료들로부터도 무기명 이메일을 받는 등 선발에 좀더 주의를 기울이기로 했다. 울산시의 한 관계자는 “시정지원단의 목적은 퇴출이 아니라 자성의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이라며 성격변화를 분명히 했다.
서울시와 달리 서울 자치구들도 퇴출에 무게를 두고 있지 않다. 강북구와 구로구는 사실상 단 1명의 해당자도 없으며 마포구는 3명을 선발했다가 얼마 안돼 모두 복직시켰다. 영등포구 역시 3명을 특별업무에 배치했다 곧 복직시켰다. 이들 지자체들은 인사혁신방안을 정기적이라기 보다는 사안이 생길 때마다 시행할 방침이라고 밝혀 사실상 사문화 방향으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시정연구관제를 운영하는 인천도 정년을 2,3년 앞둔 직원 16명이 명예퇴직을 했을 뿐 40, 50대에서 퇴출시킨 직원은 거의 없다. 전북 군산시는 토목직 1명을 대기발령했다 복직시킨 후 제도를 없애버렸다. 전북도 등 일부 지자체들은 퇴출제를 도입했으나 애초부터 퇴출보다는 재교육에 비중을 두고 운영하고 있다.
검토과정에서 도입을 포기한 지자체들도 상당수다. 경기도는 퇴출제보다는 포상제가 업무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도입을 아예 배제했으며 경기 안양시, 전북 전주시도 자료수집 단계에서 도입 포기를 선언했다. 대전 서구 역시 계획 수립단계에서 도입을 유보했다.
경실련 박완기 정책실장은 “내부반발을 이유로 이 것을 외면한다면 제 밥그릇만 챙긴다는 비난과 함께 시민들의 불신감만 더욱 조장하는 자충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범구 기자 gogu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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