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중립국’ 스위스가 총선을 앞두고 인종주의 논란으로 들끓고 있다. 현 다수당의 인종주의적 선거 캠페인으로 빚어진 좌우파간 충돌이 폭력사태로까지 번지는 상황이다.
7일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서 열린 극우 성향의 스위스 국민당의 대중 집회에 좌파 극단주의자들이 난입해 20여명이 다치고, 수십 명이 연행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날 집회에 1만여명이 참가해 연방 의사당까지 행진하려 했으나 복면을 쓴 1,000여명이 습격해 각종 집회시설물을 부수고 불을 질러 집회장이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지가 전했다.
이번 폭력 사태는 국민당이 범죄 외국인 추방 등을 내세우며 공격적으로 펼치고 있는 인종차별적 선거 캠페인에서 비롯됐다.
연방의회 제 1당이면서 연립정부의 일원인 국민당은 이번 선거 포스터부터 ‘보다 나은 치안을 위해’라는 슬로건 아래 ‘세 마리의 흰 양이 검은 양을 발로 차는’ 모습(사진)을 담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천국이냐 지옥이냐’는 제목의 선거 영상물에선 무슬림 남자를 집에서 빈둥거리는 사람으로 비하하면서 잠재적 범죄자로 암시하는 내용을 담았다가 출연 배우가 고소해 현재 방영은 중단됐다.
국민당은 또 외국인 가족 중 누구라도 폭력 마약 등의 범죄를 저지르면 가족 모두를 추방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10만명 서명운동도 벌이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범죄와 상관없는 친척까지 처벌한 나치의 연좌제를 연상시키는 법안이라며 경고하고 있다.
국민당은 외국인이 스위스 인구의 20% 가량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범죄의 70% 가량을 외국인이 저지르고 있다며 범죄 척결을 위해 강력한 조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엔 외국인의 유입이 스위스 사회를 오염시키고, 스위스의 복지 제도와 정체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메시지도 깔려 있다.
하지만 스위스는 유럽 국가 중 외국인이 시민권을 획득하기가 가장 어려운 국가인데다 노동력의 25% 가량을 차지하는 외국인들은 스위스인이 기피하는 단순 저임금 노동을 메워주고 있다.
좌파 및 중도 정당들로부터 ‘파시스트’ 등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지만 국민당은 21일 치러지는 총선을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27%를 차지, 2위인 사민당을 5% 가까이 앞서고 있다. 독일의 네오나치 정당들도 이들의 선거 캠페인을 연구할 정도다.
하지만 이 같은 캠페인이 평온과 번영, 안정의 나라라는 스위스의 이미지를 흔들고 있다. 좌우파간의 갈등이 커지면서 수 십년 간 정치적 안정의 기틀이었던, 주요 정당 간의 ‘컨센서스’에 기초한 통치 방식도 위기를 맞고 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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