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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무대다] <38> 심로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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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무대다] <38> 심로악기

입력
2007.10.0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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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악기 시장은 미국이다. 전문 연주가뿐 아니라 학생들의 음악 교육 수요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학생 10명 중 3명은 한국 업체인 심로악기가 만든 바이올린을 쓴다. 설립 30년 만에 수백년 역사의 세계적 악기 메이커들을 제친,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심로악기의 바이올린 개척사를 따라가 본다.

심로의 탄생

창업 초기 일본 등에서 악기를 수입해 국내에 판매하던 심로악기가 본격적으로 바이올린 제작ㆍ수출에 나선 것은 1989년 강원 원주시에 공장을 설립한 후부터다. 당시 국내 바이올린 시장을 휩쓸던 일본제 스즈키 바이올린보다 더 좋은 바이올린을 싸게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에서 출발했다.

물론 여기에 필요한 기술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피나는 노력의 결과로 얻어졌다. 바이올린은 원래 100% 손으로만 만드는 악기다. 아름다운 울림을 위해서는 나무로 된 몸통 안쪽을 부위마다 다른 두께로 깎아줘야 하는데 기계로는 이런 굴곡을 맞추기 어렵다. 숙련된 장인의 솜씨에 따라 가격이 수백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른다. 300년이 됐어도 여전히 수억원을 호가하는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교육이나 취미용에도 이런 비싼 바이올린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등장한 게 얇은 나무를 여러장 붙여 기계로 압축하는 프레스 공법이다. 대량생산으로 가격은 싸졌지만 수제품에 비해 내구성이나 음질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심로악기는 기계로 손처럼 깎는 기술에 도전했다. 유럽의 가구공장에서 나무를 깎는 공법에 착안, 정교한 굴곡을 기계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기계가 읽어 들이는 표준 모형만도 나무에서 시작해 철판, 석고, 알루미늄을 거쳐 우레탄에 이르렀다. 2년 여간의 밤샘 연구 결실이었다. 170단계에 이르던 바이올린 제작 공정이 기계화 덕분에 40단계로 줄어 고품질 제품을 대량ㆍ고속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심로악기 측은 “지금도 이 기술은 세계 유일”이라고 자랑한다.

이런 신기술로 탄생한 것이 바로 심로악기의 원조ㆍ대표 브랜드 ‘심로’다. 시장의 반응은 놀라웠다. 출시 직후 92년 미국 시카고 악기박람회에서 미 최대 악기유통업체인 UMI사로부터 합격점을 받아 5,000대 수출계약을 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35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보급형 세인트 안토니오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심로악기는 국제 시장에서 값싼 중국제 바이올린에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품질은 떨어지지만 초저가 공세를 펼치는 중국산이 무서운 속도로 시장을 잠식했다. 국내에도 원가 3만~4만원짜리 중국산이 쏟아져 들어왔다. 결국 심로는 인건비가 싼 중국에서 바이올린을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95년5월 중국 톈진 공장이다.

초기에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현지 중국인 직원들에게 세심한 바이올린 제작기술을 전수하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 몇 달 동안은 불량률이 80%에 이르기도 했다. 심로악기는 직원들을 모아놓고 불량품을 산더미처럼 쌓은 자리에서 화형식을 가지는 충격요법까지 썼다. 부품마다 제작자 이름을 새겨넣는 실명제도 실시했다. 8개월 만에 정상화에 성공해 96년5월 마침내 세계 시장에 ‘세인트 안토니오’ 바이올린이 선을 보였다.

당시 중국산이 저가 바이올린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호주 공략에 나섰다. 최대 악기 도매상 페이톤사를 찾아 “똑같이 중국에서 만들었지만 전혀 다른 제품”임을 강조했다. 페이톤사는 바이올린의 둘레에 쳐진 검은 선(퍼플링)에 주목했다. 바이올린 음색에 큰 영향을 끼치는 퍼플링을 값싼 중국산은 그저 색칠로만 그려넣어 팔았지만 안토니오는 일일이 흑단 나무로 박아넣은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페이톤사는 “교육용 바이올린도 단지 저렴한 가격보다는 변하지 않는 음질이 중요하다”며 안토니오를 선택했다. 현재 중국공장에서는 연간 5만 대 가까운 안토니오 바이올린이 양산돼 세계 35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고가품 칼 하인리히

보급형 바이올린에서 성공을 거둔 심로는 드디어 고급 바이올린에 도전하기로 했다. 가격은 정통 수제에 비해 훨씬 싸지만 소리는 뒤지지 않는 바이올린을 유럽시장 한 가운데서 만들어 팔자는 의도였다. 독일의 수백년된 악기 제작사들이 모여있는 마르크노이키르헨에 공장을 낸 건 2002년. 현지에서 스카우트한 악기제작 장인(마이스터)들에게 제작공정을 맡기고 도색도 기계 대신 붓으로 칠하는 핸드바니싱 작업으로 생산했다. ‘칼 하인리히’라는 고급스런 제품명도 붙였다.

2002년 3월 프랑크푸르트 악기박람회에서 호평을 받은 뒤, 미국 호주 일본 등 선진국 시장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 전문 오케스트라 연주자의 연습악기(일명 세컨드 악기)로 쓰일 정도의 품질 때문이다. 호주의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 샤미안 가드 시드니음대 교수는 첫눈에 보?칼 하인리히를 세컨드 악기로 샀다.

김원정 사장은 “심로악기가 만든 바이올린의 최대 장점은 상대적으로 저가이면서도 좋은 소리가 오래 간다는 점”이라며 “비록 대량생산 공정으로 만든 제품이지만 우리 악기를 사는 소비자에게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악기라는 마음가짐으로 품질 유지에 최선을 다하는 게 비결”이라고 말했다.

■ 심로악기는 어떤 회사

심로악기는 1978년 창업 후 30년 가까이 단 한해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 숱한 중소기업이 도산했던 외환위기 시기에도 흑자를 이어갔다.

김원정 사장이 말하는 만년 흑자의 비결은 의외로 간단했다. 우선 소비자들의 수입이 줄어도 가장 늦게 줄이는 게 교육비여서 교육용 악기 수요는 좀처럼 줄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품질을 위해 고집스레 고가의 유럽산 원목을 썼는데 숙성을 위해 미리 구입해 놓은 유럽산 원목이 외환위기 때 환율 폭락으로 오히려 이익을 보게 됐다는 것이다.

심로의 품질을 앞세운 원칙경영은 여러 차례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수년 전 인터넷 쇼핑몰과 홈쇼핑 채널에 바이올린이 판매품목으로 등장했을 때 김 사장은 '설마 사람들이 악기를 보지도 않고 살까' 하며 진출을 주저했다고 한다. 실제 포장을 뜯어도 조립과 조율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택배로 받은 악기를 들고 또 동네 악기점을 찾아야 했던 탓에 반응도 시원찮았다. 이를 간파한 심로악기는 포장을 뜯자마자 연주할 수 있게 완조립 형태로 온라인용 제품을 출시, 판매실적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

심로악기의 창업자는 심재엽 현 한나라당 의원이다. 대우실업 근무 당시 독일에서 한국산 기타를 팔던 경험을 살려 악기, 그 중에서도 바이올린을 주력상품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2000년대 들어 심 의원이 정계로 진출하면서 부인인 김 사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경영에 어려움은 없었냐는 질문에 김 사장은 "세계적으로도 악기 업체는 대부분 가족들이 운영하는 가계 경영 형태"라며 "남편의 사업을 도우며 알게 된 상대업체 가족들과의 인연이 있어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심로악기 경영도 이런 가족경영을 밑바탕으로 깔고 있다. 대량생산을 한다고는 하지만 역시 마지막 손 마무리 작업이 악기 품질의 관건이라 직원을 믿지 못하면 품질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심로악기에는 수십년째 함께 일하는 직원이 유독 많다.

심로악기는 수년 전부터 사회공헌 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 악기를 접하지 못하는 소외계층 아동들을 돕고자 일선 초ㆍ중ㆍ고교에 바이올린을 무상 또는 원가에 제공하고 있다. 또 미국에서 활동중인 최유경 양 등 한국계 영재 연주자를 발굴해 바이올린을 지원하고 있다. 김 사장은 "바이올린은 기본적으로 끌어안고 켜는 악기여서 아이들의 정서함양이나 합주를 통한 인성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심로악기는

1978년5월 동해통상으로 출발

89년5월 강원 문막공장 준공. '심로' 상표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생산 개시

89년8월 미국, 유럽연합 등에 수출 개시

91년11월 무역의날 100만불탑 수상

95년5월 중국 톈진심로악기 유한공사 설립

96년1월 심로악기 주식회사로 사명 변경

96년11월 무역의날 500만불탑 수상

2001년4월 독일 심로무직인스트루멘테 Gmbh 설립

2007년 현재 세계 35개국에 바이올린 등 현악기 수출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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