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의 인상적 장면을 남기고, 엄숙한 민족적 해후가 끝났다. 언론은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이라는 여론을 전하고 있다. 한국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중 74%가 ‘회담이 성과 있었다’고 답했고, KBS에서는 76%가 그러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에 대한 지지도도 치솟았다. 한국일보에서는 43%가, KBS에서는 54%가 ‘잘한다’고 답했다. 회담성과는 1차에 비해 명료해진 부분과 진전된 부분이 많이 눈에 띈다.
1차 회담 후 김정일 위원장은 남한 답방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노 대통령의 이번 방북도 5개월 남은 임기를 고려할 때 너무 늦었다. 그러나 보수 정당ㆍ언론의 집요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가 회담을 성사시킨 것은 역사적 의미가 크다. 국민은 그런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 성공적 정상회담이라는 여론
외국의 평가도 대부분 긍정적이다. 그러나 일본 시즈오카현립대 이즈미 하지메 교수의 평가는 좀 다르다. “공동선언문에 대한 인상에서 양측의 통일에 대한 태도가 그다지 뜨겁지 않았다.” 남북이 서로 통일을 서두르지 않는, 현실적인 접근방식을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냉철한 그의 지적이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그렇다. 경제협력이 강조되는 데 비해 통일에 대한 열정이 뜨거워 보이지 않는 회담이고 선언문이었다.
통일은 높이 외친다고 빨라지는 것만이 아닐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에는 북녘 사람들이 자주 말하는 ‘우리 민족끼리’를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1차 회담 때는 공동선언문 1, 2항이 모두 통일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고, ‘우리 민족끼리’도 1항에 들어 있는 말이다. 2항은 남의 연합 제안과 북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통일 논의에 더 구체적 진전이 없는 것이 서운하다.
평화와 경제협력이 통일의 주요한 징검다리임에는 틀림없다. 정부가 보수 세력의 공격 목표였던 퍼주기 식 지원 대신, 시장논리에 의한 경제협력을 강조하는 사정도 이해가 간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이번에 합의된 경협을 추진할 경우 약 10조원(112억 달러)이 든다고 한다. 그것은 체제경쟁에서 승리한 남측이 부담할 통일비용으로 보아야 한다.
미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저명한 경제학 교수 레스터 서로는 7,500억 달러로 추정돼 온 한반도 통일비용을 분석하며, 예상보다 적은 비용으로 많은 기회와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성장 경쟁력을 잃어가는 한국이 통일을 이룬다면, 북한의 저임금 덕분에 향후 20~30년 간 효율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예로 홍콩은 1977년 중국의 덩샤오핑이 인접지역에 경제특구를 열자, 제조업자들이 제조원가를 크게 낮추면서 금융ㆍ수송ㆍ마케팅 등을 꽃피웠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적 성공은 통일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통일은 다른 분야에서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민족적 명제이고 선이다. 반대로 분단은 거의 모든 정치적 악의 근원이다. 분단은 장기 군사독재, 사상의 부자유, 진보ㆍ보수세력 간 극단적 갈등을 조장했다. 또한 인권탄압의 빌미가 되었고, 막대한 군비로 국가적 성장이 막혀 우리를 주변 강대국에 치이게 만들었다.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가 급성장하는 이유도 우선 국토가 크기 때문이다. 통일 없이는 결코 일류국가가 될 수 없다.
● 통일주역 허영심이라도 갖길
이승만과 김구에 대한 평가는 크게 다르다. 이승만은 분단을 고착시켰고, 김구는 통일을 추진하다 희생됐기 때문이다. 역사는 김대중 노무현이 통일을 위해 노력한 정치인으로 기록할 것이다. 어린애처럼 물어 본다. 정작 통일은 누가 이룰 것인가? 통일과 정상회담을 대선과 연결시키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닌 정치인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분단국에서 정치적 입신을 한 바에는 통일주역이 되고픈 허영심이라도 가지라고.
박래부 논설위원실장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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