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로 취임 100일째를 맞은 고든 브라운(56) 영국 총리가 집권 초기부터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1997년부터 10년간 재무장관을 역임하며 ‘철의 재상’이란 별칭을 얻은 브라운 총리가 영국의 개혁을 부르짖으며 총리에 올랐던 모습과 사뭇 대조적이다.
브라운 총리가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다는 평가는 그가 최근 영국 정가를 뜨겁게 달군 조기 총선설을 일축하면서 촉발됐다. 브라운 총리는 6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국민들에게 영국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국민이 원하는 것은 총선이 아닌 총리 직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제1야당인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론 당수는 “굴욕적인 후퇴”라며 “이는 브라운 정부가 대단히 취약하고 우유부단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했다.
영국 정가에서는 브라운 총리가 노동당의 지지율이 제1야당인 보수당의 지지율을 10% 앞설 때만 해도 조기 총선을 언급했던 것과 달리 상황이 불리해지자 갑자기 ‘말 바꾸기’를 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지난 주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보수당과 노동당의 지지율은 각각 38%로 같았고 일부 조사에서는 보수당이 노동당을 3% 포인트 역전하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브라운 총리가 조기 총선을 수용,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단명 총리로서 불명예 퇴진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총리의 임기가 5년인 영국에서 총리는 아무 때나 총선을 소집할 권리가 있다. 브라운 총리는 블레어 전 총리의 임기를 이어 받은 상태로 2010년까지 총선을 소집할 필요는 없다.
브라운 총리의 발목을 잡은 것은 경제 상황이다. 뉴욕타임스는 캐머론이 이끄는 보수당이 상속세 삭감을 강력히 주장하면서 중산층의 많은 지지를 획득하고 있으며 수년간 런던과 잉글랜드 남동부 지역의 집값이 폭등하면서 노동당의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도 최근 노던록 은행의 파산 위기설과 10년 전에 비해 42%나 상승한 물가가 브라운 총리에게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지난 주 알리스테어 달링 재무장관이 내년 영국의 경제 성장률이 하락할 것으로 발표한 것도 브라운 총리에게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브라운 총리는 취임 직후 런던과 글래스고에서 발생한 테러 및 올해 여름 영국을 강타한 폭우와 구제역 발생에 대해 차분하고 신속한 대응으로 상당한 리더십을 보여줬다고 평가받았다. 외교에서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이라크 전에 대한 입장을 달리하는 등 전임 블레어 총리와는 다른 스타일로 국민들의 ‘변화’에 대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브라운 총리가 경제 위기와 조기총선 실시 여부를 놓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그에게 변화를 이끌 추진력을 기대한 국민들에게 적잖은 실망을 안겨줬다는 분석이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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