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대 캠퍼스 한복판에서 공사가 한창이다. 종합교육연구단지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건물 4개동이 하늘로 치솟고 있다. 관악산 턱 밑에까지 건물들이 치고 올라오더니 더 이상 지을 곳이 없자 이제 중심부가 파헤쳐지고 있는 것이다.
호젓한 길 양편에 아름드리 나무가 늘어섰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캠퍼스를 둘러싼 관악산과 삼성산에서 내려다보면 수백동의 건물이 빼곡히 들어선 것이 마치 신도시의 아파트단지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서울대가 발전한다는 생각이 들기는커녕 “이건 아닌데” 하는 회의가 앞선다.
눈여겨 볼 것은 최근에 짓는 건물에 하나같이 대기업 이름이 붙어있다는 것이다. SK경영관, LG경영관, CJ어학연구소, 포스코체육관, 동원생활관 등등. 거액을 희사한 대기업 이름을 딴 이들 건물은 화려한 외양과 세련된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삼성이 150억원을 기부하고 세계적인 건축가가 설계한 서울대 미술관은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대학에 이런 건물들이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오랜만에 가본 고려대는 더욱 우스꽝스러웠다. LG와 포스코가 각각 100억원씩 기부해 LG-포스코경영관이라는 긴 이름이 붙은 건물에는 이학수 강의실, 강신호 강의실, 김승유 강의실, 박현주 라운지는 물론 현역 정치인인 이명박 라운지까지 있다. 심지어 의자에도 기부자의 이름이 붙어있다. 경영관과 100주년기념 삼성관 등 새로 지은 건물들에 학교를 상징한다고 하얀 화강암으로 호화롭게 장식한 것도 눈살이 찌푸려졌다.
입만 열면 열악한 재정형편을 하소연하는 게 우리 대학들이다. 기부금입학제 도입과 대학등록금 인상은 매년 거론되는 단골메뉴다. 등록금을 지금의 2배로 올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학비를 대주자는 발상이 고려대에서 나온 것도 재원부족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일 것이다. 그러면서 기업들이 어렵사리 낸 발전기금으로 무조건 건물부터 짓고 보는 행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갈수록 학생들이 줄어든다는 경고음이 잇달고 있는데도 수백 억원 짜리 건물을 아무렇지 않게 뚝딱 잘도 만들어내는 이유는 뭘까. 교육적 측면보다는 당장 보기에 삐까번쩍한 건물이 남들 보기에도 그렇고 학생 유치에도 훨씬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대학의 수준이 언급하기도 창피할 정도라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경제력은 세계 10위를 넘보는 데 세계 100위권에 드는 대학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세계적인 석학 조장희 가천의대 교수가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한국 대학은 기부금을 받아 건물에 투자하고 미국의 대학은 교수에 투자한다”고 꼬집은 말이 절실히 와 닿는다. 그는 훌륭한 학자를 초빙하는데 대학이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기부금으로 세계적 스타교수를 영입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며 한국 대학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고 개탄했다. 조 교수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서울대 등 모든 대학이 예외 없이 강의의 절반을 시간강사에 맡기는 풍토에서 무엇을 기대하랴 싶다.
대학의 위기니, 인문학 또는 이공계 위기니 하는 말도 따지고 보면 일차적으로 대학 스스로의 책임이 아니던가. 대학가에 거세게 일고 있는 개혁의 바람은 교수와 직원, 학생 이전에 대학본부 수뇌부에서부터 몰아쳐야 한다.
이충재 부국장 겸 문화부장 cj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