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당사국의 10ㆍ3 북핵 2단계 이행합의와 10ㆍ4 남북정상선언으로 한반도 정세와 남북한 및 주변 4강의 관계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북한 핵 문제와 남북의 군사적 긴장 해결에 진일보한 조치를 담은 2개의 합의로 향후 동북아 역학 구도가 급격하게 요동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번 두 합의에서 드러난 특징은 북핵 문제 진전에 따른 미국의 대북 관계개선과 북한의 대미국ㆍ 대한국 외교 강화 움직임으로 요약된다. 북한은 냉전시기 중국ㆍ 러시아 등 북방외교, 90년대 중반 냉전 질서 해체 후 북방과의 등거리ㆍ자주외교에 주력했다. 그러나 이제 북한은 남방(미국, 한국, 일본)으로 외교의 큰 물줄기를 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핵 신고ㆍ불능화 이행을 골자로 한 10ㆍ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될 경우 11월 또는 12월로 예상되는 6자 외교장관 회담이 한반도 주변 역학구도에 큰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이 자리에서 북핵 문제의 종착점인 핵 폐기와 평화협정, 북미ㆍ북일 관계개선을 위한 큰 그림이 합의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플루토늄의 조속한 해외반출 등 핵 폐기 과정인 3단계 조치에 대한 진전된 그림이 그려질 경우 북미, 북일 관계도 급물살을 탈 수 밖에 없다.
북미관계에 있어 미국의 전향적인 자세도 예상된다. 올해 말로 예정된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해제 및 적성국 교역법 적용면제 조치 이행을 넘어 내년에는 대외 원조법 개정 등 각종 대북제재 완화 조치와 직간접적인 대북원조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 수교의 전단계로서 대표부가 설치도 거론된다. 60년간의 적대 관계가 상당부분 청산될 공산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북핵문제와 북미관계 급진전은 ‘10ㆍ4 정상선언’을 담보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이다. 즉 대북한 원조와 국제금융기구 지원을 제한하고 있는 대외원조법, 수출관리법 등 미국의 북한 제재 법률이 완화ㆍ페지될 경우 해주 특구 개발이나 경의선 철도 등 각종 SOC 개보수에 국제차관 도입이 가능해진다. 남북협력과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추진이 한층 탄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일본인 납치문제로 교착된 북일 관계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일본으로서는 북핵과 북미관계 개선의 큰 흐름에서 벗어날 경우 외교적 고립이 될 수 있어 좋은 모양새가 아니다. 때문에 일본인 납치 및 요도호 테러범 보호문제 등 북일 현안에 대한 실용적 절충이 점쳐진다.
당장 일본이 연내 테러지원국 지정해제를 사실상 명시한 ‘10ㆍ3 2단계 이행합의’를 승인한 것도 납치문제에 대한 입장완화를 시사한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납치문제가 진전될 경우 북한은 경제개발을 위해, 일본은 한반도 주변상황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위해 북일간 협력이 급속도로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남방외교 강화 노력은 순망치한(脣亡齒寒)으로 표현되는 북중 관계에 큰 영향을 줄 공산이 크다. 남방과의 정치ㆍ경제적 협력강화가 중국의 대북 영향력 축소를 가속화할 수 있다. 중국은 대북원조를 통해 큰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 이후 북중 관계가 다소 소원해진 양상이다. 북한은 은근히 한반도 평화협정 협의과정에 중국을 배제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그러나 한반도 역학구도 변화에는 여전히 변수가 많다. 우선 북한이 진정성을 갖고 핵 폐기 절차를 빠르게 진전시킬지 아직 불투명하다. 북한은 핵 신고에 핵무기를 제외할 만큼 여전히 핵을 지렛대로 가질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더욱이 북한인권문제를 중시해온 부시행정부가 북핵 뿐만 아니라 인권문제를 지렛대로 사용할 경우 북미관계 개선은 브레이크가 걸릴 수도 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두 합의가 향후 동북아 역학구도에 상당한 영향을 줄 가능성은 높다”면서도 “변수가 많은 만큼 아직 이를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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