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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한글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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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한글날 풍경

입력
2007.10.0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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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희떱다’라는 말을 읽었는데, 뜻이 알 듯 말 듯했다. 사전을 찾아보니 ‘속은 비어도 겉으로는 뽐내다’ 등의 뜻이었다. 그 뜻 중의 한 갈래가 ‘언행이 배때벗다’라는 말로 이어진다. 다시 ‘배때벗다’를 찾았더니, ‘반지빠르다’라는 말로 건너 뛴다. 부끄럽게도 내겐 모두 낯선 말이다. 세 낱말이 모두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 안 됐지만, 곰살궂은 면에서는 애착이 가는 토속어다. 김주영의 소설 <객주> 에나 나옴직한 말이다. 새삼 드넓은 우리 말의 미답지 중 한 모퉁이를 딛은 듯, 반가움도 일었다.

▦ 글과 말은 역사적 운명을 함께 해왔다. 몇 해 전 한말연구학회의 토박이말 이름 조사에 따르면, 여자 이름으로는 아름 슬기 보람 하나 등이 많았고, 남자 이름은 한솔 슬기 하늘 우람 등의 순서였다. 남자보다 여자의 이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또한 한글학회가 조사한 바로는 충남 태안에 사는 소녀 김온누리빛모아사름한가하의 이름이 가장 길었다. 그 오빠 이름도 금빛솔여울에든가오름으로 만만치 않았다. 본인들도 긴 이름을 좋아하는데, 친구들은 이름의 중간이나 끝을 편한 대로 부른다고 한다.

▦ 요즘 짓는 아파트를 보면, 의미도 잘 모를 영어 이름 투성이다. 오래 된 아파트들도 영어 이름으로 바꾸고 싶어한다. 영어 이름이면 아파트가 현대적 이미지를 지니게 되고, 값도 높아지는 모양이다. 비뚤어진 문화적 감성 앞에서 한글 이름 아파트들은 초라하게 주눅들고 있다. 문화제국주의라는 개념은 학문적으로 입증되었다기보다, 하나의 가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아파트와 공사, 기업 등에서 우리 이름이 영어에 밀려나는 현상은 우리가 자초하는 문화제국주의와 다르지 않다.

▦ 내일은 한글 반포 561돌이 되는 한글날이다. 이 날을 전후로 한글학회 등은 다양한 축하 행사를 열고 있다. 행사 중에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펼치는 세종대왕 어가 행렬도 포함돼 있다. 우리에게 침투하는 영어 이름의 거센 물결을 생각하면, 이런 행사가 한낱 공소할 뿐이다. 한글날을 맞아 영어 명칭을 자제하자는 캠페인이라도 전개해야 할 듯하다. 다행히 아직 사람 이름에는 영어 물이 들지 않았다. 한글날을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영어 이름의 범람을 걱정해야 하니, 모순과 비극이 따로 없다.

박래부 논설위원실장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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