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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북핵 6자회담의 속도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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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북핵 6자회담의 속도 논쟁

입력
2007.10.0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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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에서 북핵 6자회담의 속도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등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일부 한반도 전문가들은 최근 이뤄진 ‘10ㆍ3 합의’에 대해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너무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한다. 올해 초 마카오 은행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자금 문제 때문에 수개월을 허송했던 때를 떠올리면 격세지감마저 생긴다.

■ 미국 속도는 시한설정 때문

그 동안 한국 정부는 대체로 미국도 북한에 ‘줄 것은 줘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만큼 이 같은 미국의 ‘과속’을 바라던 바였을 것이다. 특히나 미국이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해 속도를 내준 것은 고맙기까지 한 일이다. 6자회담이 지지부진했다면 남북 정상회담의 효과는 반감됐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움직임을 과연 환영만하고 있어도 좋은 것인지는 곰곰이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 속도를 올리고 있는 것은,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속도를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시한을 설정했기 때문이다. 북한 핵시설 폐쇄에 이은 2단계 조치인 불능화를 비롯해 모든 핵 프로그램의 신고를 연내에 마친다는 것 등이 ‘10ㆍ3 합의’의 핵심이다.

언뜻 보면 북한을 시한에 졸라매는 일이 성공한 것 같지만 여기에는 시한을 요구한 측도 알면서 빠질 수밖에 없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시한을 미리 정해 놓고 집착하다 보면 시한 내에 달성해야 할 합의의 내용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50% 수준의 불능화를 연내에 이루는 것’이 ‘좀더 집요한 설득과 압박, 협상을 통해 두,세 달이 더 걸리더라도 불능화 수준을 80%로 올리는 것’보다 반드시 나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가. 대답은 ‘아니오’일 수도 있는 것이다.

북한 핵무기 폐기라는 궁극적 목표의 긴 여정에 비추어 보면 불완전한 불능화나 핵 프로그램 신고의 ‘연내’ 달성은 큰 의미가 없으며 왜 시한이 ‘연내’이어야 하는지도 분명치 않다. 시한은 협상의 실질적 성과라기보다는 정치적 상징성에 가깝다.

불능화 수준을 높이면 합의 자체가 어렵지 않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으나 반론을 그대로 인정하면 매번 협상에서 북한에 끌려 다녀야 한다는 뜻이 돼 버린다. 6자회담 미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언제부터인가 언론의 관심을 협상의 실질 내용보다는 시한에 묶어 두려는 의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힐 차관보의 ‘언론 플레이’는 불능화나 핵 프로그램 신고의 수위나 내용이 갈수록 모호해지는데도 시한만 살아 남으면 그것을 획기적 진전으로 여기도록 유도하고 있다.

■ 북핵폐기 오히려 길어질 수도

문제가 좀 더 심각해 보이는 것은 힐 차관보는 물론, 임기말 외교적 치적에 목말라 하는 부시 대통령의 조급증이 앞으로 더 심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미국만이 아니라 때로 균형자 역할을 해줘야 할 한국도 조급하기는 마찬가지다. 더욱이 남북 정상회담까지 한 상황에선 최소한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6자회담이 순항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한미 양국의 조급증은 그 시너지 효과로 부정적 여파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바람직하기로는 특정 정권의 이해에 관계없이 확고한 원칙을 갖고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지만 이를 기대하기는 이미 어려워져서 이래저래 북한의 협상력만 높아지게 됐다. 결국 한미 양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서두르는 듯이 보일지 몰라도 북한 핵무기 폐기에 걸리는 시간은 오히려 길어질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워싱턴=고태성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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