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매일 새벽 5시께 일어나 하루 8시간씩 그림을 그립니다. 몇 살에 세상을 뜰지 모르지만 늘 신인다운 모색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완성이란 없어요.”
한국 기하추상을 대표하는 남사(藍史) 이준(88ㆍ예술원 회장) 화백의 회고전 ‘자연의 빛으로 엮은 추상’이 경기 고양아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구상이 지배하던 한국 화단에 기하학적인 추상화를 도입하며 한국 현대 추상미술을 개척해온 그의 작품 140여점을 시기별ㆍ화풍별로 선보이는 전시다. 1950년대 구상회화부터 1960년말 추상으로 선회한 이후의 작품들, 지난해 미수(米壽)전에 내놓은 신작들까지 70년 화력의 대표작들이 총망라됐다.
이 화백의 작품은 기하추상임에도 냉기를 느낄 수 없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차갑고 날카로운 선, 면, 원이 그의 화폭 위에선 리드미컬하게 몸을 맞대며 따스한 자연의 풍경으로 어우러진다.
“나는 ‘자연의 모든 것은 원과 원추와 원통으로 환원된다’는 폴 세잔의 철학을 평생 지지해온 사람입니다. 기하학의 눈으로 자연을 보고 재구성하려고 노력했죠.” 스스로를 세자니안이라 부르는 그는 다양한 색의 교차와 색띠의 분할로 산과 나무, 해, 달 등 자연의 풍경을 간결하게 빚어내며 정서로 충만한 추상의 세계를 펼쳐보인다.
이 화백은 1973년 파리에 갔다가 그랑 팔레에서 열린 장 뒤뷔페의 전람회를 봤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몽마르트의 가난한 화가들이 남의 집에 배달된 우유를 훔쳐 먹으며 작품을 하던 때였는데도, 그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도 일요화가 수준이었어요. 열심히, 치열하게 그려야겠다는 자극이 됐죠.”
유례 없는 미술시장의 호황으로 작품을 완성하기 무섭게 팔아치우는 작가들이 즐비한 시절이다. 하지만 이 화백은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의 3배를 집에 갖고 있다고 했다. 개인 컬렉터의 집에 작품을 사장시키는 것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미술관에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서다. “나는 치부나 인기 같은 건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저 신인 같은 자세로 끊임없이 새로운 모색을 할 뿐입니다.”
전시에는 유럽여행 동안 그린 스케치와 영상, 사진 자료들도 소개된다. 12월2일까지. (031)960-0180
박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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