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칸영화제는 동유럽 변방의 젊은 감독에게 최고의 영예를 선사했다. 크리스티안 문주(39). 숨소리조차 내기 힘들었던 차우체스쿠 치하의 루마니아를 직핍하게 그려낸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이 황금종려상을 차지하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제12회 부산영화제(PIFF) 경쟁부문(뉴커런츠) 심사위원을 맡아 부산에 머물고 있는 문주 감독을 해운대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2002년 부천영화제 참석에 이어 두 번째로 방한한 그는 “부산영화제가 특별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며 PIFF에 참석한 기쁨을 표시했다. 심사를 맡고 있는 아시아 영화들에 대해서는 “아시아 영화, 유럽 영화 등으로 구분 짓기엔 영화 자체가 너무 다양하다”며 “굳이 특징을 말하자면 부드러운 전달 방식과 편안한 전개”라는 의견을 밝혔다.
<4개월…>은 공산 독재 시절 한 여성이 법으로 금지된 낙태시술을 받는 과정을 세밀한 시선으로 좇아가는 작품. 문주 감독은 “낙태금지는 노동집약적 산업 성장, 전체주의 교육을 위한 것으로 공산정권의 실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제도”라며 낙태를 영화의 소재로 삼은 이유를 설명했다. 1987년을 배경으로 삼은 것에 대해서도 “영화의 바탕이 된 실제 사건이 일어난 해이자, 차우체스쿠 정권의 막바지로 최악의 시기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영화는 엄혹한 시절의 이야기지만 그 배경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문주 감독은 “이것은 ‘누군가의 이야기’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설명을 시작하면 그것은 역사 수업일 뿐이지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산독재의 핍박을 관객 스스로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영화는 쥐어짜도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만큼 건조하고 사실적이다. 리얼리즘 화법에 대해 그는 “삶과 직접 연관이 있는 얘기에서 힘을 느끼고, 그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관객들도 그런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롱테이크(긴 장면을 카메라의 끊김 없이 한 번에 찍는 것)를 통해 영상을 만드는 것도 “감독의 의도를 강조하기 보다는, 관객이 스스로의 눈으로 영화를 보기 바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러 영화제에서 주목받는 감독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지만, 루마니아에서 영화는 ‘산업’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규모가 작다. 문주 감독은 “적은 돈으로 영화제에 출품할 작품을 만들고, 상금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할 정도로 척박한 환경”이라며 “칸에서 상을 받아 생업인 광고제작을 당분간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칸영화제 시상식에서 “돈이 없어도, 스타가 없어도 영화는 만들 수 있다. 이 상이 ‘작은 영화’를 만드는 많은 감독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해 영화인들을 감격하게 했었다.
부산=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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